수필

【가래올 전원일기 15 】혼자 마시는 낮술

락운강촌 2009. 6. 22. 07:34

 

 

락운의 가래올 전원일기 (15)

가래올 락운


혼자 마시는 낮술


 아무리 술을 좋아하고 끼마다 반주(飯酒)를 즐기지만 좀처럼 낮술은 자제한다.

전해오는 옛말에 낮술은 ‘지 애비 어미도 몰라본다.’고 해서가 아니라

낮술은 일상의 낭만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낮술에 취하고 싶다.

기분 좋아서가 아니라  배신당한 슬픔을 달래는 데에는 술뿐이 없어서이다.


내가 여기 고향으로 돌아 올 결심을 하기까지에는 사실 갈등도 많았다.

힘든 농사일이 내 몸에 맞지 않았고, 찌든 가난도 싫었고,

대학 문턱까지 드나든 놈이 실패하고 돌아와서 소똥이나 만지며 농사를 짓는다는

‘70년대 당시의 손가락질이 그 무엇보다도 싫었기에(지금은 농인이 技藝人이지만)

다시는 고향 찾지 않으리란 각오로 눈물로 보내는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면서

안개 속 새벽길로 앞을 가리는 눈물에 징검다리 헛디디며 떠났었다.


그래도 몇 십 년이 지나 나이 먹어 정년퇴직이 다가오게 되면서

그 옛날 흔적이라도 기억하고 옛 동창생과 선후배들이 몇 명은 남아 있기에

그들과의 정겨운 정을 되 잇자고 나는 과감히 여기 고향을 선택했고,

이제 겨우 두 달이 지나고 있다.

- 겨우 두 달 -


짧은 시간이 지나고 있을 뿐인데 벌써 내가 그들로부터 거부당할 줄이야.


오늘 아침, 초·중 동창 모임회장이 '어제 얘기 했듯이 오늘 동창모임에

데리러 갈 테니 기다리라.'는 전화를 받고,

'역시 어제 얘기 했듯이 아직은 참석하고 싶지 않다.'며 끝내 거절하고

말았다.


꼭 참석하여 오랜만에 만나는 벗들과 정이 듬뿍 담긴 술 한 잔 권하고

또 받고 싶었지만 엊그제 충격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엊그제 동창 3명이 우리 집을 방문했었다.

무척 반가웠고 그들이 나를 반겨 동창 모임에 당연히 가입시킬 것으로

믿었지만 그들은 나의 합류를 그렇게 호락호락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가 막혔다.

겨우 12명인데 그 중 5명이나 나를 거부하고 있다니?

자신들은 쏙 빼고 나머지 밝힐 수 없는 5명 핑계를 대면서....

괘씸한 놈들!

내가 너희들에게 무얼 잘못했고, 앞으로 모임을 유지하는 데에 무슨

장애가 된다고 고향 거주 모임에서 나를 배척해?


설사 아무리 내가 좀 잘못한 게 있기로서니 지나간 수십 년 세월에 희석되지 않는

결코 잊지 못할 그 무슨 원수 진 일이 있었는가?


도무지 알 수 없는 배척이다.


물론 그동안 경조사에 나라에 대한 충성을 핑계로 본의 아니게

일일이 참석하지 못했고 부조금도 많이 못 보낸 건 사실이다.

그건 너희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내 결혼식에 참석 해 주길 했었냐? 3회에 걸친 부모들 장례식에 와 주길 했었냐?

서로가 격조하다보니 소식 전할 겨를이 없었지 않은가?


그렇다고 남은 세월도 서로 간 이대로 서먹서먹하게 지나자는 건가?

어차피 좁은 공간에서 마주칠 일도 많을 텐데....


원망하면서 한 잔,

미안해하면서 한 잔,

그리고 외로워서 한 잔....

나머지 한 잔은 차라리 취하라고 마셨건만,

낮술 소주 한 병이 선풍기 바람에 김이 빠져서인지 나를 자극하지는 못했다.


가래올 이 동네는 오늘따라 왜 이리 조용하기만 한가?

아무도 오가는 이가 없다.

농사일 바쁜 분들은 어디론가 일하러 나가 있고,

외지에서 온 분들은 가족들과 주말을 함께 하러 도회지로 떠나 있다.

일요일엔 평소 그렇게도 소음을 내리쏟던 군용 비행기들도 휴식을 취하고 있다.

특히 나의 반려자 아내는 다친 발 요양하러 저 멀리 일산에 가 있다.


형수가 만들어 준 빈대떡

비 오던 어제 만들어 오늘은 냉장고에서 차디차게 식어 있지만

차라리 차가운 그대로 씹어 보니 빠진 이빨 틈새로 오징어 조각이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닌다.

그래도 소주 입가심에 목젖을 무사히 넘기니 식도가 짜릿한 만족으로

고마워한다.



혼자 마시는 낮술.

2%만 더 채워지길 갈망하여 배신자 노래 CD를 틀어도, 

진주희 파일을 Play 해도 결코 마음이 다스려지질 않는다.


지금쯤 부부동반 모임에서 제각각 벌개진 취기에 남의 마누라 환심 사기에

바쁘겠지....

미워도 그들을 위해 또 한 잔

너희들은 나를 못 오게 해도 내 마음은 너희들 곁에서, 몸뚱이는 여기서

낮술로 함께 하고 있다.

- 토마토의 곁가지를 떼어 달라는 메시지를 무시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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