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살면서도 좋은 샘물 외면한 죄
락운 김영호
평소와 같이 베개를 껴안고 쿨쿨∼잘 자고 있었다.
발 다친 아내를 잠결에라도 건드릴까봐 며칠 전부터 혼자 자면서 옆구리가 허전하여
커다란 베개를 껴안고 자고 있는데 평소엔 그렇게도 부드럽던 그 베개가 마치 속에
송곳이 들어와 있는 양 옆구리를 콕콕 쑤시는 듯 했다.
그래도 한창 달콤한 첫잠이기에 통증을 무시하고 계속 잠을 청하였지만
몇 분이 지나기도 전에 베개뿐만 아니라 바닥과 담요까지도
내 등 쪽 옆구리를 콕콕 찔러왔다.
점점 빠르게 밀려오는 고통을 달래려고 간이 안마기로 한참을 두드리니 좀 나은 듯 했다.
하지만, 그 고통은 두 배 세 배, 시간이 갈수록 배가(倍加) 되어
숨도 못 쉬도록 압박해오고 있었다.
젊었을 적 창자 꼬임으로 가스가 배출되지 못해 식은땀을 흘렸던 바로 그런 고통이었기에
몇 시간만 참다가 날이 밝으면 병원에 가서 주사 한 방이면 끝나니
참을 수 있는 한 참아보자며 버티었다.
그러나 그 인내라는 건 정신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실감할 수밖에 없게 되니
발 다쳐 깁스 상태인 아내는 옆에서 자신이 운전할 수 없음에 더욱 안타까워
어쩔 줄 모르다 결국 이웃집 신세를 지자고 하다가 아무리 아파도 곤한 잠에
빠져 있는 농부들을 어떻게 깨워 비까지 주룩주룩 내리는 이 밤길을 운행시킬 수
있냐는 내 고집에 결국 새벽 두 시 반에 생전 처음 119를 불렀다.
그런데 시골 119구급차는 예상과는 달리 시골 밤길에 그다지 익숙하지 못했다.
아내와 계속 통화를 하면서도 우리 집을 못 찾고 약 200미터 앞 도로에서
엉뚱한 소로로 접어들다 뒷바퀴 한 쪽이 지면을 이탈하여 오도가도 못 하고
있었다.
아내는 깁스한 다리를 쩔뚝대면서, 나는 아픈 몸을 움켜 안은 채 그곳까지
달려가 구급차 뒷좌석을 눌러 겨우 땅에 닿게 하여 후진을 시도했지만,
헛바퀴 돌던 타이어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고무탄 연기를 내뿜었다.
타이어에 불이 나기 직전에 겨우 후진에 성공,
팔십 리 읍내까지 달리면서 고통 속에서도 하도 궁금해
도대체 구급차에는 그 흔한 네비게이션도 없냐고 물어보니 참으로 기가 막힌 답변,
“ 보시다시피 부착되어 있지만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은데다 본부에서 번지수를
알려주지 않아 사용할 수가 없었다.”는 답변(정확한 주소를 몇 번이나 알려 주었는데 무슨 핑계?)
세상에나 119구급차에 네비게이션 기능이 없는 상태로 시골 밤길을 헤맨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러나 더 기가 막힌 다음 사연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읍내 종합병원 응급실에서는 CT촬영 결과 나타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소변 검사 결과 혈뇨가 있는 것으로 보아 어딘가에 돌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병원엔 비뇨기과가 없고 정확한 검사도 불능하니 원주로 가는 게 좋단다.
(명색이 종합병원인데??)
옆에 먼저 와 있던 동일한 환자는 나보다도 더 고통스러워 하다가 망설이다 원주로 갔지만,
엊그제 병 문안차 가 본 원주 병원이 떠올라 도무지 맘이 내키지 않았다.
사회적응교육을 받으면서 전원생활에 성공한 선배의 얘기가 떠올랐다.
- 본격적인 농사를 짓는 귀농이 아닌 전원생활을 하려면 오지를 택하면 안 된다.
노후에 가까이 할 수밖에 없는 큰 병원이 근처에 꼭 있어야 한다는 말씀-
큰 병원은커녕 가까이 약방 한 곳 없는 이 오지에 터를 잡은 내가 잘못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제 와서 되돌릴 수도 없고.......
강한 진통제 주사를 맞고 복용용 진통제 몇 알을 얻어서 집으로 돌아와 보니
언제 아팠느냐는 듯이 말끔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작은 결석은 물을 많이 먹으면 저절로 오줌으로 나올 수도
있다기에 요행히도 자연적으로 치유되었으리라 여겨졌지만,
늘 그랬듯이 나에게는 그런 공짜가 있을 리 없었다.
밤이 되니 다시 고통이 오기 시작했다.
두 차례에 걸쳐 응급실에서 얻어온 진통제 복용으로 통증을 극복, 아침을 맞자마자
내가 살던 경기도 고양시 일산으로 향했다.
이틀에 걸친 검사와 치료.
0.56㎝의 요로결석이란다.
전혀 상상도 못하던 그런 병이 왜 생겼느냐니까 의사 선생님은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왜 예상을 못했느냐고 반문했다.
- 즉, 얼음을 먹으면서도 땀을 흘릴 정도의 다한증인 체질이면 당연히 물을 많이
마셔야 하는데, 그 좋은 강원도 홍천 산골에 살면서도 물이라면 고깃국마저도 안 먹고 있었고,
더구나 인체의 수분 손실을 촉진하는 소주 막걸리 등 술만 계속 마시고 있었으니
요로결석이 생긴 것은 너무도 당연하단다. -
“ 요로결석이란 게 그렇게도 아픈 건가요? ”
“ 이 통증은 아이 낳을 때 산모가 느끼는 진통과 결줄 정도로 대상포진과 더불어
3대 극심 통증으로 꼽고 있습니다.”
“ 어떻게 치료해야 하나요?”
“ 옛날엔 수술을 해야 했지만 요즘은 '체외충격파쇄석술'이란 걸 하고 있는데
고에너지 충격파를 몸 밖에서 결석에 쏘아 가루로 부수어 소변으로 자연 배출케
하기 때문에 고통이 없어 마취도 없이 1시간 정도 걸리니 그걸 해 봅시다.”
그러나 나는 그 한 시간 동안 다시 한 번 이를 악무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아픈 데를 수백 번 또 때리는 그 잔인한 고 에너지 충격파!
얼마나 아팠으면 시술 후 소변에는 선홍색 핏빛이...낙조(落照)처럼 좌변기를 물들였다.
“ 요로결석은 재발이 많다던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산골에 산다면서요? 이제라도 그곳의 깨끗한 샘물을 외면하지 말고 수시로 마시면
아마 재발은 없을 겁니다.”
산골 살면서도 좋은 샘물을 외면한 죄! - 4박 5일의 지난주는 정말 악몽이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마치 꿈을 꾼 듯 했다.
새로 핀 접시꽃과 더욱 무성해진 패랭이꽃 인사를 받고서야
제대로 집에 돌아왔음을 실감하면서
이제는 술 대신 물을 마시겠노라 다짐하고
오늘도 새삼스레 산골 물맛이 이렇게도 맛있는데
그동안 왜 외면하고 술만 마셨을까를 반성해 본다.
하지만 그 결심도 그때 뿐, 몇 년이 흐른 지금 나는 다시 물대신 술이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래올 전원일기 20 】도무지 해몽 안 되는 그녀와 관련 이상한 꿈 (0) | 2009.07.10 |
---|---|
【 가래올 전원일기 19 】7월 초 가래올 풍경 (0) | 2009.07.09 |
【가래올 전원일기 16】가래올집 6월 풍경 (0) | 2009.06.29 |
【가래올 전원일기 15 】혼자 마시는 낮술 (0) | 2009.06.22 |
【 가래올 전원일기 13 】주문진 Tour 참여기 (0) | 2009.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