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산골 살면서도 좋은 샘물 외면한 죄

락운강촌 2009. 7. 6. 17:03

 

산골 살면서도 좋은 샘물 외면한 죄


락운 김영호


  평소와 같이 베개를 껴안고 쿨쿨∼잘 자고 있었다.

발 다친 아내를 잠결에라도 건드릴까봐 며칠 전부터 혼자 자면서 옆구리가 허전하여

커다란 베개를 껴안고 자고 있는데 평소엔 그렇게도 부드럽던 그 베개가 마치 속에

송곳이 들어와 있는 양 옆구리를 콕콕 쑤시는 듯 했다.


그래도 한창 달콤한 첫잠이기에 통증을 무시하고 계속 잠을 청하였지만

몇 분이 지나기도 전에 베개뿐만 아니라 바닥과 담요까지도

내 등 쪽 옆구리를 콕콕 찔러왔다.


점점 빠르게 밀려오는 고통을 달래려고 간이 안마기로 한참을 두드리니 좀 나은 듯 했다.

하지만, 그 고통은 두 배 세 배, 시간이 갈수록 배가(倍加) 되어

숨도 못 쉬도록 압박해오고 있었다.


젊었을 적 창자 꼬임으로 가스가 배출되지 못해 식은땀을 흘렸던 바로 그런 고통이었기에

몇 시간만 참다가 날이 밝으면 병원에 가서 주사 한 방이면 끝나니

참을 수 있는 한 참아보자며 버티었다.


그러나 그 인내라는 건 정신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실감할 수밖에 없게 되니

발 다쳐 깁스 상태인 아내는 옆에서 자신이 운전할 수 없음에 더욱 안타까워

어쩔 줄 모르다 결국 이웃집 신세를 지자고 하다가 아무리 아파도 곤한 잠에

빠져 있는 농부들을 어떻게 깨워 비까지 주룩주룩 내리는 이 밤길을 운행시킬 수

있냐는 내 고집에 결국 새벽 두 시 반에 생전 처음 119를 불렀다.


그런데 시골 119구급차는 예상과는 달리 시골 밤길에 그다지 익숙하지 못했다.

아내와 계속 통화를 하면서도 우리 집을 못 찾고 약 200미터 앞 도로에서

엉뚱한 소로로 접어들다 뒷바퀴 한 쪽이 지면을 이탈하여 오도가도 못 하고

있었다.


아내는 깁스한 다리를 쩔뚝대면서, 나는 아픈 몸을 움켜 안은 채 그곳까지

달려가 구급차 뒷좌석을 눌러 겨우 땅에 닿게 하여 후진을 시도했지만,

헛바퀴 돌던 타이어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고무탄 연기를 내뿜었다.


타이어에 불이 나기 직전에 겨우 후진에 성공,

팔십 리 읍내까지 달리면서 고통 속에서도 하도 궁금해

도대체 구급차에는 그 흔한 네비게이션도 없냐고 물어보니 참으로 기가 막힌 답변,

“ 보시다시피 부착되어 있지만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은데다 본부에서 번지수를

  알려주지 않아 사용할 수가 없었다.”는 답변(정확한 주소를 몇 번이나 알려 주었는데 무슨 핑계?)


세상에나 119구급차에 네비게이션 기능이 없는 상태로 시골 밤길을 헤맨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러나 더 기가 막힌 다음 사연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읍내 종합병원 응급실에서는 CT촬영 결과 나타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소변 검사 결과 혈뇨가 있는 것으로 보아 어딘가에 돌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병원엔 비뇨기과가 없고 정확한 검사도 불능하니 원주로 가는 게 좋단다.


(명색이 종합병원인데??)

옆에 먼저 와 있던 동일한 환자는 나보다도 더 고통스러워 하다가 망설이다 원주로 갔지만,

엊그제 병 문안차 가 본 원주 병원이 떠올라 도무지 맘이 내키지 않았다.


사회적응교육을 받으면서 전원생활에 성공한 선배의 얘기가 떠올랐다.

- 본격적인 농사를 짓는 귀농이 아닌 전원생활을 하려면 오지를 택하면 안 된다.

노후에 가까이 할 수밖에 없는 큰 병원이 근처에 꼭 있어야 한다는 말씀-


큰 병원은커녕 가까이 약방 한 곳 없는 이 오지에 터를 잡은 내가 잘못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제 와서 되돌릴 수도 없고.......


강한 진통제 주사를 맞고 복용용 진통제 몇 알을 얻어서 집으로 돌아와 보니

언제 아팠느냐는 듯이 말끔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작은 결석은 물을 많이 먹으면 저절로 오줌으로 나올 수도

있다기에 요행히도 자연적으로 치유되었으리라 여겨졌지만,

늘 그랬듯이 나에게는 그런 공짜가 있을 리 없었다.


밤이 되니 다시 고통이 오기 시작했다.

두 차례에 걸쳐 응급실에서 얻어온 진통제 복용으로 통증을 극복, 아침을 맞자마자

내가 살던 경기도 고양시 일산으로 향했다.


이틀에 걸친 검사와 치료.

0.56㎝의 요로결석이란다.

전혀 상상도 못하던 그런 병이 왜 생겼느냐니까 의사 선생님은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왜 예상을 못했느냐고 반문했다.

- 즉, 얼음을 먹으면서도 땀을 흘릴 정도의 다한증인 체질이면 당연히 물을 많이

  마셔야 하는데, 그 좋은 강원도 홍천 산골에 살면서도 물이라면 고깃국마저도 안 먹고 있었고, 

  더구나 인체의 수분 손실을 촉진하는 소주 막걸리 등 술만 계속 마시고 있었으니

  요로결석이 생긴 것은 너무도 당연하단다. -


“ 요로결석이란 게 그렇게도 아픈 건가요? ”

“ 이 통증은 아이 낳을 때 산모가 느끼는 진통과 결줄 정도로 대상포진과 더불어

  3대 극심 통증으로 꼽고 있습니다.”

“ 어떻게 치료해야 하나요?”

“ 옛날엔 수술을 해야 했지만 요즘은 '체외충격파쇄석술'이란 걸 하고 있는데

  고에너지 충격파를 몸 밖에서 결석에 쏘아 가루로 부수어 소변으로 자연 배출케

  하기 때문에 고통이 없어 마취도 없이 1시간 정도 걸리니 그걸 해 봅시다.”


그러나 나는 그 한 시간 동안 다시 한 번 이를 악무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아픈 데를 수백 번 또 때리는 그 잔인한 고 에너지 충격파!

얼마나 아팠으면 시술 후 소변에는 선홍색 핏빛이...낙조(落照)처럼 좌변기를 물들였다.


“ 요로결석은 재발이 많다던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산골에 산다면서요? 이제라도 그곳의 깨끗한 샘물을 외면하지 말고 수시로 마시면

  아마 재발은 없을 겁니다.”


산골 살면서도 좋은 샘물을 외면한 죄! - 4박 5일의 지난주는 정말 악몽이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마치 꿈을 꾼 듯 했다.

 

 

 

새로 핀 접시꽃과 더욱 무성해진 패랭이꽃 인사를 받고서야

제대로 집에 돌아왔음을 실감하면서

이제는 술 대신 물을 마시겠노라 다짐하고

오늘도 새삼스레 산골 물맛이 이렇게도 맛있는데

그동안 왜 외면하고 술만 마셨을까를 반성해 본다.


하지만 그 결심도 그때 뿐,  몇 년이 흐른 지금 나는 다시 물대신 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