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까지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강촌 김락운
o 고달프게 살아온 전후 세대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짬뽕국물 속에 빠져 헤매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후 태어난 일본의 단카이(團塊) 세대 家長들이
재작년부터 정년퇴임을 맞아 스스로에 대해 이런 표현을 썼단다.
자신들은 지금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짬뽕국물 속에 빠져 헤매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우리도 6·25 전쟁 직후 태어난 세대가 이제 정년퇴임을 앞두고 이런 갈등을 겪고 있다.
우리 전후 세대들은 전쟁으로 인한 폐허 속 오두막 초가집에서 태어나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에서 보는 바와 같은 소 몰고 논밭 가는 풍경을 보면서
미군들이 버리고 간 군용 트럭을 개조한 '도락꾸'와 차장이라 불리는 안내양이
옆구리를 발로 차면서 '오라이'를 외치는 완행버스, 또 시골 출신 대부분은
아예 오솔길 십여 리 길을 걸어서 등하교를 하면서 자라났다.
새벽종이 울리고 새아침이 밝았다면서 새마을 운동을 벌이는 부모와 형님들이
일터에서 마을 확성기를 통해 부산항을 떠나는 맹호·청룡·백마부대 장병들의
파월 장면을 라디오 중계로 들으면서 눈물을 훔치면
그 군인 형님들이 죽으러 가는 줄만 알고 덩달아 따라 울었고....
남녀칠세부동석 유교 전통 잔존 환경 속에서 사춘기를 겪다보니
덧나는 여드름과 함께 가슴앓이 괴로움에 남몰래 많이 울기도 했었다.
예비고사란 것에 매달리는 고교 3년 동안 몇 십대 1의 경쟁률에 시달렸지만
막상 대학 입학 후엔 적당히 서적 몇 권 옆구리에 끼고 공부하는 척(물론 열공하는
자도 많았지만)하다가
남자들은 3년간의 국방의 의무에 임하여 전임 대통령이 썩는 기간이라고 표현했지만,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성들은 투철한 국가관과 반공정신으로
군 조직 속에서 진정한 남자로 성장하여 직업 전선으로 뛰어 들었으며,
가방끈이 짧든 길든 급변하는 사회 변화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환경을 창조해 나갔다.
아파트란 벌집도 지어 살아보고 운전면허를 따 자랑스럽게 자동차를 몰아보고,
가난에서 벗어나자는 일념으로 온갖 역경을 맨몸으로 극복,
빨리빨리 문화를 창조하면서 오늘의 경제 선진국 대한민국을 건설했다.
사무직원들의 경우,
6·25 이전인 1946년에 이미 '에니악'이란 1세대 컴퓨터란 것이 생겼다고 하지만
그들은 70년대 말까지도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모른 채 일일이 연필로 문서를 기안하고
볼펜으로 뒷장에 까만 먹지를 대고 정서(正書)하면서 각종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래서 천성적으로 예쁜 글씨체가 아닌 자들은 설움과 열등감도 겪었다.
이후 타자기가 들어와 사무실마다 '타자수'란 별도 직업(주로 여성)이 있었는데,
그녀들의 작업량이 엄청나 다소 고생도 했지만,
이들에게 잘 못 보이면 보고서가 제때에 작성되지 않기 때문에
가끔 용돈도 주고 선물도 사주면서 환심을 사야만 했다.
군부대에서는 이 타자수 역할을 행정 서기병들이 수행하다 보니
입대를 앞둔 병사들은 타자학원에서 자격증까지 취득해야 했었고,
간부들 대부분은 타자를 칠 줄 모르다 보니 이 병사들이 아니꼬워도
은근히 떠받들기까지 하는 굴욕감을 참아내야 했다.
하지만 급속도로 업무량이 많아지고, 타자기 보급 대수도 많아지면서
본인들이 직접 작업하는 시대를 맞아 뒤늦게 타자를 익혀야 하는 고달픔을
겪어야 했으니....
물론, 우리들은 거부할 수 없는 대세임을 눈치 채고
말 안 듣는 손가락을 혹사해 가면서 주야로 열심히 익혔지만,
얼마 못가 4벌식에서 2벌식으로 바뀌어 다시 연습해야 했고,
좀 익숙해지려 하니 90년대 초부터는 컴퓨터가 들어와
문서 작성을 이 괴물로 하게 되었다.
문서작성의 경우,
처음엔 '하나'란 프로그램이었기에 똑딱 거리는 두 손가락으로 겨우 익히자
'슈퍼 명필'로 바뀌어 다시 적응해야 했고, 다시 '아리랑(hwd)'으로 바뀌어
겨우 익숙해지자마자 '한글(hwp)' 체제로 전환되어
또다시 헤매다보니 폭주하는 업무량은 열 개의 손가락을 다 써도 모자랐다.
더구나 파워포인트나 프레젠테이션은 기본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등 너머로 익혀야 했으니 이중 삼중 고역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94년도부터는 인터넷이란 상용 전산망이 대한민국에 들어오면서
우리 전후 세대는 세대차 적응에 자신감을 상실할 정도로 힘겨웠다.
인터넷 문화는 체계적 교육을 받지 못했던 우리 세대로서는
마치 소달구지 시대에서 갑자기 고속도로 시대를 만난 듯 당황스러웠고,
선배로서의 체면을 포기하고 스스로 후배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굴욕을
감내하게 했다.
그래도 나의 경우엔 다행히도 친절한 젊은 분들이 잘 가르쳐 주었기에
그나마도 덜 고생했다.
계급은 높았지만 예쁘고 아주 친절한 여군 장교는
내가 하루에도 수차례 찾아가며 귀찮게 한 개 두 개 물어보는데도
단 한 번의 짜증도 없이 성의를 다해 지도해 주었음을 비롯해 많은 후배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적어도 업무 수행 과정에서 낙오될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기에
수많은 또래들이 도중하차 했어도 끈기 있게 여기까지 견디어 왔다.
그럼에도 가속도의 변화 속에서 종이매체가 전자매체로 전환되어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 사회로 바뀌고,
전화도 귀찮아 문자메시지나 e-mail로 처리하며,
공장이 잘 돌아가면 직원을 더 뽑는 것이 아니라 로봇과 자동화 시설로
오히려 있는 직원을 잘라내는 세상이 다가옴을 겪으면서
이제 정년이란 규정이 아니더라도 적응하기엔 너무 벅찬 나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면서
공포스런 미래에 불안하기만 하다.
어떻게 무엇을 하며 다가오는 인생 후반기를 살아가야 할까?
o 평균 수명 100세라면 남은 세월이 너무 긴 것이 아닌가?
이젠 누구나 다 아는 바와 같이 환갑잔치의 의미가 없다.
경로당에서도 65세 이상만 받아주고, 받아 준들 가보면 제일 어려
잔심부름이나 하게 되니 스스로 칠순 잔치 후에나 가게 된단다.
그러니 60대로는 청춘도 노인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더구나 정년퇴임 전후 상태에서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100세까지 40년이란 긴 세월을
더 살아야 할지 벌써 지루하기만 하다.
적당하게 77세 정도에서 세상을 하직하고 싶은데,
고도로 진보한 현대의 치료의학은 사람을 간단하게 죽게 하지는 않는단다.
박영숙 유엔미래포럼대표를 비롯한 미래 학자들에 의하면,
농경시대 6000년, 산업시대 200년, 정보화시대 50년,
그리고 후기정보화시대는 10∼20년 만에 지나간다고 한다.
5년 후에 다가온다는 ‘후기정보화시대’가 무엇인지?
현재는 나노, 바이오, 인포테크 시대 혹은 드림소사이어티, 즉, 문화의 시대, 혹은 의식기술시대, 또는 지구촌 통합시대가 온다고 하는데,
솔직히 우리 세대 범인(凡人)인 나로서는 무슨 소리인지조차 감이 잘 안 온다.
2025년까지 인터넷은 모든 곳에 다 연결되어 식품 포장, 가구, 문서, 모든 곳에
연결되고, 자신의 가구나 집기에 연결된 인터넷을 리모트 즉 먼 곳에서 조종하는
시대가 오면서 가장 흔한 인간의 일을 대신하게 되고
로봇이 등장하여 잔심부름까지 다 해 준단다.
그런 미래 세상에서 지금도 인터넷 문화에 둔한 우리 세대는 어떻게 뭘 하면서
남은 수명을 보내야 하는가?
정부의 고령화 인구 대책이 우리 세대들의 복지를 책임져 줄까?
어림없다.
한국의 정치에 대해 이미 젊은 세대들이 정치기사를 기피하고 있듯이
일반 국민의 염증은 너무나 심각하여 국회의원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댓글 달고 이메일 보내고 홈피에 글 올리며 국민의견수렴은 여론조사기관
혹은 국민전자투표로 하고 복잡한 법은 법 만드는 기술자 혹은 컴퓨터가 하게 되면서
200년 역사의 대의민주주의가 수명을 다해
국가의 힘도 빠지고 기업의 힘이 강해지다가 점차 개개인의 힘이
강해지는 사회가 온다니 정부를 신뢰하기엔 무리일 것 같다.
지금도 지방 시골에는 젊은이들이 드물다.
그런데 우리나라 인구는 2015년부터 급속히 줄고 대도시 인구는 20%나 감소되고,
특히 앞으로는 저 출산의 재앙으로 2305년 인구 5만 명을 향해 해와 달이 갈수록
우리나라 인구가 가속도로 줄어 간단다.
죽지 못해 숨 쉬는 고령화 인구들을 부양해야 할 젊은이들이 없거나 극소수이니
쇠약해진 몸뚱이와 둔화된 머리로는 산송장 신세를 면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참으로 불확실한 미래이다.
남성들의 상실감은 더할 것이다.
부부 간에도 공동재산이란 개념이 없어진 지 오래인데
나이가 들수록 경제권이 아내에게 넘어가면서 남편이 아내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이사 갈 때 운전석 옆에 앉고, 곰국 끓여 놓고 외출하는 아내를 잘 살피라’는
뼈 있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될 정도로 남편들의 위상 추락 속도는
아내가 외출 준비를 할 때면 “여보, 나도 같이 갈게”라고 말하는 ‘여보 나도족’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믿고 싶지 않지만 아내는 벌써부터 나에 대한 신뢰가 식은 지 오래인 걸 보면
내가 맥 못 추는 노인이 되었을 때 등을 긁어주는 대신 장난감 효자손이라도
사다 줄지 장담하기 어렵다.
영국 어느 학자에 의하면, 현재 66억 인구를 보존시킬 만큼 많은 냉동정자가 존재하여
여성이 더 이상 남성을 필요로 하지 않고, 성 상대 또한 로봇이 될 수도 있는 등으로
벌써부터 ‘싱글 맘’들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당장 우리 딸부터가 결혼 않고 혼자 살겠다고 버티고 있다.
그래도 내 생전에 그런 사태가 오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세상은 급변하고 빠른 세월만큼이나 나의 노화속도는 가속화 할 텐데
100세까지 무엇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나의 고민은
제자리에서 맴돌기만 하고 있어 답답하다.
사는 데까지는 건강하게 살고 싶다.
성경 속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좋다는 약이 없지만 딱 한군데 잠언서 17장 22절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즉, 마음의 즐거움이 최고의 양약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가오는 미래 세계와 내 노구를 생각하면 결코 즐겁지가 않다.
‘기우(杞憂)’란 단어가 있다.
쓸 데 없는 걱정. - 분명히 쓸 데 없는 걱정이어야 하지만...
어렸을 때 갑자기 소나기가 와서 남들이 뛰어 가면
어리석은 나는 뭐 하러 앞에 오는 소나기까지 뛰어 가서 맞느냐면서
그냥 걷다가 비를 더 맞고 말았었다.
소나기가 오면 뛰어 가야 한다.
더 현명한 것은 소나기가 올 것을 대비하여 우산이라도 챙겨야 한다.
‘후기정보화시대’라는 소나기!
나는 이 소나기를 대비하고 싶다.
결코 단카이(團塊) 세대 家長들처럼 짬뽕국물 속에 빠져 헤매고 있는 불쌍한
노인이 되고 싶지 않기에 오늘의 고민을 멈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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