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골 계신 어머니 귀금속 간수 잘 하세요.
강촌 김락운
"아이고! 우리 손자 첫돌 반지인데, 그걸 훔쳐 가다니!"
외딴 산골 만수 어머니는 며칠 전 읍내에 갔던 김에 둘째 며느리가 낳은 손자에게 선물할
돌반지를 사다 옷장 속에 보관했었는데 그만 도둑을 맞고 말았다.
그것도 평소보다 서너 배나 비싸진 금값 때문에 산고사리 꺾고, 약초캐어 1년 동안이나 꼬깃꼬깃 모아 온 속주머니 돈을 선뜻 쓸 수가 없어 망설이고 망설이다
큰맘 먹고 샀던 금반지인데, 그걸 잃어버렸으니 기가 막혔고, 허무했다.
더 억울한 것은
사실 만수 아머니는 재작년에 만수가 결혼할 사람이라면서 데리고 온 여자가
베트남 출신인데다 이미 한국에서 결혼했다가 쫓겨난 여자라서 영 탐탁하지가 않아
결혼식까지 불참하면서 극구 반대했었지만 손자가 첫돌을 맞도록 혼자서만 끝내 반대할 수가 없기에 이번 돌잔치를 계기로 못이기는 척 며느리로 정식 인정하려 했었는데....
반지를 도둑 맞은 사실을 전해 들은 만수녀석이 오히려 어머니 마음을 몰라주고 오히려 더욱 의심하고 미워하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끝내 우리 결혼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속셈으로 돌반지를 잃어버렸다고
거짓말 하는 것이 분명하다. 시골에 무슨 도둑이 있고, 도둑이 들었다고 해도 왜 다른 건 놔두고 금반지만 가져 갔겠는가?"
하지만,
고지식한 만수는 고향 떠난지 오래 되어서인지 요즘의 고향 시골 실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1997년 11월 이후의 IMF 통제 체제의 경제난과 맞먹는... 아니, 오히려 더 어렵다는 시국 경제 하에서 '졸업백수'에 '삼초땡'이란 은어가 의미하듯
심각한 실업난을 맞아 이른바 생계형 범죄가 늘어나고 있고,
특히 금값이 급상승하고 있다보니 좀도둑들은 문단속이 허술하기 그지없는 시골로 향하고 있단다.
그것도 옛날처럼 밤중이 아니라 햇빛 쨍쨍 대낮에 주민들의 눈에 노출된 상태에서.....
며칠 전 서울 모 박사 출신 60대 서 용만 씨는
벌건 대낮에 최신품의 가전제품들을 몽땅 털렸다.
그는 찌든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공기와 물 좋은 시골에 정착하려고 전원주택을 짓기 위해 작년부터 개울가에 컨테이너 두 채를 연결해 임시 거처를 만들고,
수시로 방문하는 가족과 친지들과의 친선 도모 모임을 가지면서
대형 고급 텔레비젼, 노래방, 사진기, 컴퓨터, 냉장고 등을 비치하고 있었는데
며칠 전 서울 다녀오는 사이에 도둑들이 대낮에 트럭까지 몰고 와서
이 컨테이너 도어록을 풀고는 최신품의 가전제품들을 몽땅 싣고 사라졌다.
이 장면들을 목격한 이웃 주민들은 대낮에 설마 도둑은 아니겠지 하면서 주인이 다시 서울로 짐을 옮기는 것으로만 짐작한 채
그저 그 대담한 도둑 장면을 뻔히 보고만 있었다니....
대부분의 시골 집들은 옛부터 도둑 걱정이 없었다 보니 대문은커녕
통상 문단속도 없이 들판으로 일을 나간다. 그 잘 짖는 개들도 묶어놓고 기르지 않아 주인따라 갔다가 수컷 암컷 찾아
어리론가 자유롭기만 하다.
그 뿐이 아니다.
젊은이들 대부분은 일자리 찾아 도회지로 떠나 있고
연세 많은 노인들이 많다보니 귀중품 간수 개념이 너무도 순진하고 허술하다.
그저 자물쇠도 없는 옷장 속에 넣어 두고 있거나
자물쇠가 있더라도 값싼 쇳덩이에 불과할 뿐이니
도둑들로서는 이보다 좋은 먹이감이 어디 있겠는가?
강원도 홍천군 어느 마을에 지난 겨울 칠순잔치를 치른 노인 내외분만 사는 집이 있는데 할머니는 평소 패물을 좋아해 수년 전부터 슬하 3남 2녀들의 생일 선물은 대부분 패물이었고, 평소에는 착용하지도 않은 채 KBS 1-TV '진품명품'에나 나올만 한 옛 보석 상자에 보관하면서 이웃 분들이 놀어 오면 이건 언제 어느 아들이, 이건 재작년에 큰 딸이 해 준 것이라며서
자랑하고는 했었는데,
얼마 전 동네 경노당에서 열린 노인잔치에 다녀와 보니
이 보석상자가 통째로 없어졌다.
경찰에서는 신고를 받고, 이미 최근 한 달 새에 이 좁은 관내(면 소재지)에서
9건이나 패물 도둑 신고가 접수되어 골치아프다는 엄살만 피고 있을 뿐,
아직 단서조차 못 잡고 있단다.
금붙이 패물들을 잃어버리면 그 액수보다도 기념품을 잃었다는 상실감이 더 크다.
나도 작년 설 연휴 때 모처럼 고향 시골에 다녀와 보니
방범창이 뜯겨나간 채 가족들의 패물들을 몽땅 도둑맞은 적이 있었는데,
그 액수보다도 각종 추억어린 기념품을 잃었다는 슬픔이 더 컸었다.
- 내 집 마련할 때 잔금이 모자라 결혼반지까지 팔았었다는 말을 들은 딸들이
우리 결혼 20주년시 1년 간이나 용돈을 아껴 마련해 준 결혼 반지에다
근속 30주년 기념 반지를 비롯한 이런 저런 추억어린 각종 기념 패물들-
심지어는 술 좋아 하는 내가 몇 년간이나 마시고 싶은 걸 참아가며 모아 놓은 양주까지
몽땅 털리고 나니
정말 지난 청춘 자체를 잃은 듯 허무했고, 가슴이 쓰라렸었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파오고 답답해진다.
시골 계시는 순진한 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도둑맞은 귀중품들의 액수보다도 약혼과 결혼기념, 자식들의 정성어린 선물 등등.... 그 기념과 정성을 간직했다가 한꺼번에 잃어버린 그 슬픔이 오죽하랴.
그래서 요즘 시골 노인분들은 궁여지책으로
그 귀중품들을 자신들만 아는 어느 땅 속에 묻어 두면서 " 옛날 난리 때(6·25를 의미) 묻어 보고 오랜만에 묻어 보는데
하필이면 북의 대남 위협 조짐도 높아지는 등 이거 또 전쟁나는 것 아냐?" 라면서
시국을 불안해 하고 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감히 말씀 드립니다. 경제난에 실업난을 겪으면서 좀도둑이 더욱 극성입니다.
특히, 금값 폭등으로 패물도둑들이 패물 간수에 허술한 시골을 노리고 있음을 감안, 부디 고향 부모님께 귀금속 간수 잘 하시도록
지금 당장 전화 한 통 하시는 것이 작은 효도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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