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부
강촌 김락운
자유당 정권 시절
각하가 ‘뽕’하고 쌍바위골 단발 피리 소리를 냈을 때
“각하! 얼마나 시원하시겠습니까?” 했다는 말이 당시 회자 되었단다.
아부의 극치를 말함이다.
나는 이를 비난하고 싶지 않다.
천성적으로 아부를 못하는 성격인 나로서는 오히려 부럽기도 하다.
이런 돈 안 드는 아부도 있지만 옛날엔 통상 뇌물이 뒤따랐다.
사람은 누구라도 공짜로 받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기에
피천득 시인도 ‘선물’이란 수필을 통해 받고 싶은 솔직함을 논하였다.
뇌물과 선물은 분명히 다르지만
뭔가를 준다는 면에서는 상통하는 것 같다.
몇 년 전 시골에 약간의 농토를 매입하여 밭 갈고 씨를 뿌린 후
면사무소에 ‘농지원부’를 신청했었다.
소규모지만 엄연히 농사를 짓고 있기에 농지원부 발행은 당연할 줄 알았다.
하지만 반려되고 말았다.
이리 저리 알아보니 담당공무원은 마을 이장에게
정말 농사를 짓고 있는지를 전화로 물었고
이장은 뻔히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인사를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런 사실 없다고 잡아뗐단다.
그 인사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학교 선후배로서의 안면이 있어 잘 부탁한다고
악수까지 했었으니
그 인사라는 건 선물인지 뇌물인지를 못 받았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괘씸했지만 세상 현실이 그랬다.
뿌리 깊은 아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근세인 일제치하를 겪으면서
민초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선 관청 끄나풀에 아부를 해야만
일본군 징용을 모면할 수 있었고
하다못해 마을 이장의 노여움을 사지 않아야
정신대 편입을 피할 수 있었으니
우리에겐 이미 몸에 밴 근성일 수밖에 없으리라.
수십 년 전 젊었던 시절
생애 최초 공무원 조직의 초임 간부생활을 시작했을 때
선배들의 경험담이 나에겐 차라리 공갈이었고, 공포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말단 부서에 보직되면
아예 봉급은 받을 생각도 못했고
내가 받아야 할 그 봉급은 상급 부서 직위자들의 몫이
되었으며,
정기 상납 없으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말짱 헛수고였단다.
당장 어제 저녁까지도 확정되어 있던 첫 보직이
오늘 아침 신고하려니 다른 말단 직위로 바뀌어 있었다.
간밤에 누구누구가 술자리를 같이 했다는 뒷소문
절망!
그리고 세상에 대한 원망.
법으로 금지된 심야 ‘혁명 목소리 방송’을 청취하던 놈이
무슨 시월 유신의 당위성 논문을 쓰고 공직의 간부로 들어왔는가?
하지만 어찌하든 의무기간만 채우자는 체념 속에서도
일말의 희망을 붙잡고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건만
희희낙락하는 동료들과는 달리
못 한다는 꾸중과 이리저리 가해지는 업무적 압박이 일상화되고
젊은 놈이 벌써 머리카락 빠지는 고통까지 겪었었다.
옛날 조상들로부터 선배들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연명해 왔듯이
나 잘 난 것 없으니 머리 한 번 숙여보자 하고
윗분들에게 밤 인사 다니고 명절 때를 기다려 선물이란 걸 해 보았다.
그렇게 머리 조아린 효과
예전의 그 못났다던 내가 업무적 칭찬에다 공로 표창까지 받게 될 줄이야.
하지만 타고난 근본 태생적 성격이 변하면 얼마나 변하겠는가?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는 척결해야 할 폐습’ 분위기를 타고
나는 본래의 내 모습을 되찾아갔다.
대신 생존 본능으로 피나는 숨은 노력을 통해 나를 성장시켰다.
또한 주변의 아부성 인물들을 배척하게 되니
본의 아니게 미움 받으며, 남들 기피보직이나 맴돌게 되면서
속으로는 요리조리 편하게 살아가는 선배와 동료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부러워하던 이들은 조직 사회에서 일찍 밀려나고 마는
그런 삶의 이치는 인간으로서는 거역할 수 없는 천리(天理)였다.
조직사회에서 미련하게 전직(轉職)하지 못하고 정년까지 견뎌온 것이
뭐 그리 대단하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는 아부 없이 연명해 온 청빈한 삶에 대해 자부심도 갖는다.
강산이 몇 번 변하는 동안 뇌물성 아부도 다행히 거의 사라졌다.
다만 돈 안 드는 아부는 시대 발전과 더불어 더욱 교묘해진 것 같다.
어느 조직이나 우두머리 심경(心境)을 편하게 해드리는 깊은 관습이 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에 이는 동물적 본능이며 관습법이랄 수도 있다.
그것이 결코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부작용이 너무 심하다는 것이 문제다.
일종의 뇌물 없는 아부로 이어지는 현상!
우두머리가 잘 못해도, 관리상 시행착오임에도 아예 침묵하고 있거나
‘잘 하고 계십니다. 지당하십니다.’라고 딸랑딸랑하고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산다고 자찬하는 그런 분위기가 대 물려져서는
그 조직사회와 나아가 국가적 발전을 기대하기 곤란하다.
선진국 관습이 다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옛날 팀스피리트 훈련 종료시 미군 하급 간부가 자신의 짐만 챙기고
직속상관인 중대장이 땀 뻘뻘 흘리며 손수 관물을 차에 싣고 있는데도
자기 일은 다했다는 듯 담배 피며 잡담이나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속으로 저 나라 군대는 이제 끝나 간다고 생각했었지만
여전히 세계 최 강군으로 발전되고 있음을 보고 있다.
그런 서구적인 개인주의적 현상을 몽땅 닮을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지나친 우두머리 심경만 헤아리는 미풍양속(?)은
심각히 고민해 볼 과제란 생각이 든다.
이미 권위주의 시대는 지나갔다.
그런데도 우두머리 심경이 편해야만 한다는 관념을 견지한다는 것은
아직도 피해보상 심리에서 탈피 못하는 구태랄 수밖에.
아부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아부는 우두머리와 그 휘하 상위자들로 하여금
자만에 빠지게 하고 자만은 경솔을 낳고 경솔은 실패와 화를 불러오게 마련
두세 시간의 장시간 회의가 오로지 장(長)을 위한 회의 개념이고
그 우두머리가 책상에 앉아 결재만 해서는
과잉충성이란 아부에서 탈피할 수가 없다.
얼마 전 대형 사고를 계기로
높은 분들과 중견 직위자들이
말단 하급자들의 고통을 직접 느낀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면서
그들 세계에 직접 들어가 함께 날밤을 샌 일이 있었다.
이들을 접한 말단 직위자들은 각자 맡은 바에 걸맞아야 하는데
저렇게 하는 것은 위선이요, 조직 우두머리에 대한 아부라고 평했다.
즉, 뇌물 없는 아부란 것이다.
뇌물이야 비록 당시엔 눈감아지더라도
정권 바뀌면 세상에 드러나 죄 값을 치르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지만
이런 안 보이는 아부는 아부자에게 좀 더 많은 권력을 주어
아부 받는 자의 위치에까지 앉게 되고
그 권력은 그에게는 마약이 된다.
국회의원 배지(badge)만 달면 윗사람에게 반말하고
박사 학위를 받으면 그때부터 공부 안 하듯이
우두머리와 권력자들의 자만(自慢)은 조직 사회 발전을
둔화시킨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그들이 자만해지도록 보이지 않는 아부를 과연 누가 했는가?
명절 때 고속도로가 막히니까 멀쩡한 차를 견인차로 끌고 빨리 가듯이
어떻게 하든 세상 편히 살아가는 요령이긴 하다.
선임자들의 요령을 터득하고 그들이 한 것처럼 그대로 하는 것도
다 살아가는 방법이다.
옛날 영국 경호실에서는 어느 벤치 한 개를 20년간이나 보초를 섰는데
어느 경호대장이 이상해서 알아봤더니 20년 전에 그 의자 페인트칠 할 때
마를 때까지 사람들이 앉지 못하도록 보초 서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란다.
무턱대고 선임자 전철을 밟다가는 이런 헛수고가 있듯이
이제는 무조건적 관행 답습은 배제할 때도 되었다고 본다.
돈 안 드는 안 보이는 아부.
우리들은 이 아부를 인맥관리로 착각한 채 살아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진정한 인맥관리가 아부로 오해되기도 한다.
뭐가 어떻게 다르냐고 따져 묻기 전에
스스로의 행태를 반성하고 아부가 배척되는 관습사회 건설에
솔선하는 공직자상을 정립하는 길만이 내가 사는 길이요.
조직이 사는 길이고 국가가 사는 길이다.
상급자에게 과감히 건의할 수 있는 용기
자신의 잘못을 시인할 수 있는 용기
내 책임이라 떠맡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질 때
21세기에 살아남는다는 도덕국(國)이 구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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