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퐁이 이야기(꼬마편)
락운 김영호
나는 산골 동네 양지바른 아담한 양옥집에서 태어났다.
꼭 불독개 닮은 외모와는 달리 천성이 여린
주인아줌마에 의하면 나의 아빠는 진돗개 잡종이었고
엄마는 스피츠라고 한다.
(덩치로 봐서는 사랑할 것 같지 않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했다.)
내가 젖 뗄 무렵 주인아줌마네 집에 왔던 시누이가 나의 귀여운 모습에 반해
하얀 인형 같다면서 나를 품에 안고 놓질 못하고 있자
이를 본 주인아줌마가 가져다 기르라고 즉석 선물로 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진짜 주인이 나타났으니 더욱 귀염 받아야지.'하고
다짐하고 있는데,
옆에 있는 그녀의 남편이 극구 반대하고 나섰다.
" 도회지에서 개를 키우려면 방 안에서 키워야 하고 그러면 털도 날리고
특히 똥· 오줌을 어떻게 받아 내려고 그래요? "
" 청소 잘 하고 매일 목욕 시키면 되니까 가져갑시다."
" 애완견 사육비가 한두 푼인가? 제대로 키우려면
아기 한 명 키우는 것과 맞먹어요. 아니 애완견은 의료보험도 안 되고
오히려 더 들지. "
" 돈이 문제예요? 가정 정서도 생각해야지, 내가 부업이라도 해서
충당할 테니 돈 걱정은 말아요."
인간 부부의 가정사 의사 결정은 통상 아내에 달렸듯이
결국 나는 그 시누이의 품에 안겨 아주 먼 곳까지 서너 시간이나 옮겨져
경기도 일산 신도시 다세대 주택 3층집에 도착했다.
새 주인집에는 여학생 자매도 있었는데 저를 엄청나게 반겨 주면서
이름을 '꼬마'라고 지어 주었다.
다만, 하교 후와 휴일에는 너무 주물러 대어 내심 스트레스가 쌓였지만
다행히도 학생들이 주간엔 학교에 가 있어 그저 참을 만 했다.
어쨌든 나는 주인아줌마와 그 두 언니들을 잘 따랐지만
나를 첨부터 키우지 말자고 주장했던 아저씨에 대해서는 경계를 늦출 수가
없었다.
그 아저씨는 집에 와서도 아줌마 침대에 자고 싶어 하는 나를
거실로 매정하게 몰아내고는 마트에서 개집을 사다가 외롭게 나 혼자 자라고
강요하는 등 내가 미워할 짓만 골라 하고 있었다.
하루는 예방주사라면서 강제로 내 엉덩이에 바늘을 찔러 얼마나 아프던지
본능적으로 손등을 물었더니 주인을 무는 개는 버릇을 고쳐야 한다면서
눈물이 나도록 패 주었다.
매를 맞으면서도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 내 주인은 아줌마뿐인데 뭐 자기가 주인이라고? 두고 봐라!
네 명의 식구 중 아저씨만 나에게 고분고분하지 않고 있는데
꼭 서열 다툼에서 이기고 말겠다.-
*註釋 : 개는 가족 구성원 내에서 자신의 서열을 정하는 특성이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가족 구성원은 본능적으로
자기 서열 밑으로 두는 경향이 있고,
자기 뜻대로 안 되는 대상에게는 계속 서열다툼으로 도전한다.
나는 나름대로 그 아저씨를 '나쁜 놈'으로 규정하고
퇴근할 때마다 반기기는커녕 적의를 품은 이빨을 드러내며 짖어댔다.
그리고 그 나쁜 놈이 샤워 하는 동안 침대 이불 속에다
대변을 싸 놓기도 했었다.
저 나쁜 놈이 내 영역 표시물을 이불 속에서 뭉개고 당황해 하는 장면을
상상만 해도 짜릿한 흥분이 온몸을 휙 돌았다.
그런데 아뿔싸!
그걸 주인아줌마가 먼저 발견하여 저 나쁜 놈이 똥을 깔아뭉개는
장면은커녕 나만 주인아줌마로부터 배변 가리는 교육과 함께
한 시간이나 구석에서 앞발 들고 벌을 서야 했다.
나는 내심 나쁜 놈에 대한 적의가 더욱 충만해져 갔다.
그러던 중 토요일마다 삼겹살 구어 먹는 저녁 식사 때
주인아줌마와 언니들은 다이어트 시킨다면서 고기 좀
달라는 저의 몸짓을 끝내 외면한 반면,
나쁜 놈은 '그래도 한 식구'라면서 조금씩 떼어주었고
그 후에도 식사 때마다 맛있는 고기류 반찬마다 맛을 보게
해 주고 있어 먹을 때만큼은 그 놈에게 꼬리를 흔들며 아양을 떨어 줬다.
(이제 서서히 나쁜 놈도 나에게 조금씩 복종하는 면을 보이는구나...
하지만 아직은 멀었다. 더 싸워야 한다.)
나는 일요일 정발산 산책이 제일 좋았다.
오후쯤 되어 내가 내 목걸이 줄을 물어다 주인아줌마에게 가져다주면
이미 눈치 채고 온 가족들을 동원하여 나들이 채비를 했다.
그런데 이때에도 그 나쁜 놈은 게을러서 주말에 피로를 풀어야 한다는 둥
낮잠만 자려하다 언니들의 종용에 마지못해 겨우 일어나서 소나타를 운전했다.
(기왕 갈 바엔 기분 좋게 따라 나설 것이지 아직 운전은 자기만 할 줄 알면서도
선뜻 나서지 않아 내 미움을 더욱 돋우었다.)
*註釋 : 산책시간이 되어 개가 줄을 물고 오는 행위는
자신이 그렇게 하면 주인이 산책길에 나서 준다는 것을 알고
주인을 훈련시킨 것임. 개는 자기가 가정에서 왕인 줄 알 뿐,
주인에게 감사하기는커녕 자기가 서열이 높아 서열 낮은 주인이
당연히 해준 걸로 착각함.
나쁜 놈이 더 내 비위를 거스르는 것은 정발산 길 배수로를 건널 때이다.
산 중턱에서는 줄을 풀어 놓아 내 맘대로 뛰어 놀게 되는데
배수로 건널 때만은 자신이 없어졌다.
철망에 꼭 내 자그만 발이 빠져버릴 것만 같아 선뜻 건너뛰지 못하고 있어
주인아줌마와 언니들이 안아서 건네주려고 하면 옆에서
" 건너는 연습을 해야 한다. 한 번만 건너게 되면 자신감을 얻는다."
라면서 만류하여 나로 하여금 한참이나 배수로 아래 위를
오르락내리락 하도록 하는가 하면 "겁이 많아 그것도 못한다."면서
면박만 주고 무시했었다.
(난 아직 어린 하룻강아지인데도... 매정한 놈!)
내가 그렇게도 무서워했던 그 배수로도 이제 하찮게 여기게 될 정도로 자라서
벌써 열여섯 살에 이르러 어느 날 나는 생리를 하게 되었다.
*註釋 : 개의 나이
개 |
1 개월 |
2 개월 |
3 개월 |
6 개월 |
9 개월 |
1년 |
2년 |
3년 |
4년 |
6년 |
8년 |
10년 |
12년 |
14년 |
16년 |
18년 |
20년 |
사람 |
1세 |
2세 |
5세 |
9세 |
13세 |
17세 |
20세 |
28세 |
32세 |
40세 |
48세 |
56세 |
65세 |
72세 |
80세 |
88세 |
96세 |
아직도 나하고 주도권 다툼으로 엎치락뒤치락 하는 저 나쁜 놈이
내 생리 핏자국을 보더니 "더럽게 집안 구석구석 피를 묻히고 다닌다."고
못마땅해 하면서 난리다.
(정말 나쁜 놈! 여자나 암놈이나 처녀가 되면 어쩔 수 없는....... 말 그대로
생리현상이거늘 그것도 이해 못해주고 호들갑이야?)
그 나쁜 놈을 더 기가 차도록 하는 일이 벌어졌다.
내가 수컷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그나마 나쁜 놈도 수놈이기에
그 놈 다리에다 아랫도리를 문질러댔더니(애견가들 간엔 ‘붕가붕가한다’고 표현)
"암놈이 수놈행세를 한다."면서 식구들 앞에서 껄껄대며 놀려댔다.
주인아줌마가 다시는 못 그러게 하겠다면서 벌을 주었다.
(정말 너무하네. 자기들은 나까지 몰아내고 매일 밤 한 침대에서 사랑하면서....)
*註釋 : 개는 서열다툼의 일환으로 상대 인간에게도 성행위 흉내를 내는 습성이 있음.
그런데 내가 생리를 시작한 후 한 열흘쯤 지난 어느 날
그 놈이 내 허리 아래를 자극해 보고는
“ 꼬리를 바짝 드는 걸 보니 짝을 맞을 준비가 다 됐는데 인공수정이라도
시켜야 되지 않겠소?”
“ 우리가 강아지 장사할 것도 아니고, 며칠 지나면 잊어질 것이니 모른 척
합시다."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주인아줌마가 내게 저렇게나 몰인정하다니....?
그리고 오히려 나쁜 놈이 나를 두둔해 주는 게 아닌가?
내가 헷갈려 하고 있는데 가족들이 외출하고 그 나쁜 놈이 혼자 있게 되자
다정하게 나를 옆으로 부르더니
" 남들처럼 수놈도 못 만나고 얼마나 괴롭겠냐?"면서 자신의 다리를 내게
대 주었다.
나는 이놈이 나를 놀리는 것도 같은 못 미더움으로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괜찮다는 그의 눈짓에 신뢰를 느껴
나는 오랜만에 그의 다리를 앞발로 꽉 붙잡고 아랫도리를 비벼대어
모처럼 붕가붕가 흥분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퍼뜩 뭔가를 깨닫게 되는 강한 빛 한 줄기가 스쳤다.
(이 분은 천리<天理>를 바탕으로 동물에게도 정을 줄 줄 아는구나!)
그리고 또 세월이 더 흘러 내 나이 25세가 되었을 때에는
싸우면서 정이 든다고 나쁜 놈이라 부르던 그 분과의 관계가 확 바뀌었다.
본능적 서열 다툼이 아니라 엄연한 생명체로서 정이 든 것이다.
아니, 내가 그 '나쁜 놈'이 사실은 나쁜 놈이 아님을 진정으로 깨닫게
된 것이었다. - 생명체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사랑이었음을-
그는 언니들이 목욕시키기 귀찮다면서 옷과 신발을 사다 입힐 때에도
실내에서 키우면서 옷까지 입히면 털을 자라게 하는 신진대사를 막아
털이 거칠어지고 신발을 신기면 한 곳 뿐이 없는 발바닥 땀샘을 막아
체온 조절을 못할 뿐만 아니라 발바닥 패드를 약하게 한다면서
극구 만류했다.
그리고 이제는 일요일 산책도 가족들 강요가 아니라 나를 운동시켜야
한다면서 정발산과 호수공원 등 여러 곳을 데리고 다녔다.
또 발톱도 지금까지는 사람 손톱깎이로 아프게 깎아주어
발톱이 부서지고 때로는 피가 나게 하는 주인아줌마와는 달리
애견용 발톱깎이를 사다가 내 발톱을 불빛에 비추어 혈관이 통하는 곳을
정확히 점검하고 아프지 않게 깎아 주었다.
이 모든 것이 결코 나에게 서열이 아래로 밀려 봉사해 주는 것이 아님을
나는 뒤늦게야 깨닫게 된 것이다.
(물론, 어떤 애견가로부터 습득한 지식이라지만 그만치 나에게 깊은 애정을
쏟아 준다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다.)
당연히 나는 그를 '나쁜 놈'에서 '주인님'으로 이미 호칭을 바꾸었다.
그리고 당연히 퇴근할 때 악의로 짖어대던 어렸을 때부터의 버릇을
스스로 고쳐 언니들에게보다 더 꼬리를 흔들고 그 주인님 품으로 뛰어들었다.
(언니들이 나의 달라진 그런 모습에 질투를 느낄 정도였다.)
주인님도 나를 더 귀여워해서 그렇게도 못 오게 하던
안방 침대에서의 동침을 허용해 주었다.
나도 그동안 왜 나를 못 오게 했었는지를 헤아려 침대에서 자다가도
주임님과 주인아줌마가 사랑할 때에는 눈치를 채고 얼른 거실로 나가
인간보다 6배나 예민한 청각을 이용해서 끝날 때를 알아차리고
30분 내지 1시간 만에 안방 문을 조심스레 노크하곤 했다.
나는 너무나 행복했다.
주인님 사랑도 더욱더 깊어져만 갔고,
대형 정육 가공사에 다니게 된 주인아줌마는 내가 좋아하는 육류를
거의 매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인간 세상사에 '호사다마(好事多魔)'란 말이 있듯이
아니, 인간도 아닌 견세(犬世)에도 그 말이 통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어느 토요일.
아줌마가 가져온 쇠고기를 식구들과 함께 맛있게 먹고는
배가 너무 불러 주인님에게 산책 좀 하자고 졸랐으나
주인님이 축구하다 발을 다쳤다면서 언니들로 하여금 산책을 하게 했는데
도로를 다닐 때엔 목거리에 개 줄을 매어야 함에도
그날은 나도 잊었고 언니들도 잊고 그냥 밖으로 나갔었다.
위를 보고 걷지 못하는 강아지의 특성에 따라 바닥 냄새만 맡으며 지나다
순식간에 승용차 바퀴가 내 머리를 타고 넘었다.
(개 줄을 매지 않았기에 승용차는 떳떳이 뺑소니 쳤고...)
나는 본능적 비명 한 번만 지르고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가족들에 의해 동물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었지만
머리 압박으로 우선 외모상 눈이 튀어 나오고 내부적으로는
뇌가 손상되어 치료하더라도 식물견이 불가피하다는 의사 소견을 받았다.
"아빠! 식물견으로라도 키워요!"
언니들의 울음과 의사 소견에 주인님과 주인아줌마의 고심의 순간이
괴롭게 흐르고 있었다.
"그래요. 얘들 말대로 죽을 때까지는 그대로 키웁시다."
주인아줌마도 눈물을 글썽이며 식물견일지라도 키우자고 했다.
아련히 들려오는 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내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깨달았다.
하염없이 나를 쓰다듬으며 안타까운 눈물만 글썽이는 주인님을 처다 보았다.
초점이 안 잡혀 그냥 뿌옇기만 했다.
하지만 안간힘을 다해 주인님과 눈동자를 마주쳐 내 메시지를 전달했다.
- 언젠가 주인님은 뒷골이 없는 장애아들이 팔삭둥이로 태어났을 때
양육 여부 선택을 고민하다 부모로서는 키우고 싶지만 장애아들
당사자 입장에서 결국 포기 각서에 도장을 찍은 적이 있었다면서
지금 생각해도 역시 잘 선택했다고 회고했지 않았습니까?
그때처럼 저를 위해서 저를 포기해 주세요. 제발 주인님!-
주인님의 눈물이 내 눈망울에 뚝 떨어졌습니다.
나의 텔레파시를 전달받았다는 의미였기에 차라리 편안해졌습니다.
“ 의사 선생님, 안락사 시켜주십시오.”
안락사 주사약이 온 몸에 퍼져가다
마지막 파르르 앞발의 떨림을 끝으로
나는 유체이탈(遺體離脫)되어 내 몸뚱이를 중심으로 한
주인들의 슬픔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주인님은 내 몸뚱이를 집으로 옮기고는
상자에 내 물건들 하나하나를 깨끗이 닦아 함께 담았습니다.
- 밥그릇, 물그릇, 목욕 세제들과 빗 세 개, 그리고 온갖 장난감들....-
엄청나게 쏟아지는 빗속에서 가족들의 울음을 뒤로 한 채
주인님은 장대비를 맞아가며 정발산 산자락에 내가 묻힐 구덩이를 파고는
정성스레 상자를 하관한 후 가족들과 함께 마지막 묵념으로써
나를 흙으로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우산도 마다한 채 소나무 줄기에 의지한 채 담배 연기에 나를 잃은
슬픔을 날리고는 가족들을 향해 다시는 강아지 키우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나를 잊으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인님은 정발산에 올 때마다 나의 무덤을 살피기도 하고
또는 지나가면서 한참씩 바라보곤 했고......
그러다 두 달여가 지날 쯤 우울해져 있는 가족들의 성화에 못 이겨
내 후배인 ‘퐁이’를 데려 왔습니다.
나는 퐁이가 내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보고 그날로 그동안 이탈했던
유체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주인님 꿈에 나타나 진정 사랑했었다는 인사와 함께 -
그리고 다시는 주인집을 기웃거리지는 않고 있지만
내 후배 퐁이의 행복과 주인집 가운이 늘 번성하길 빌고 있다.
☞ 다음 편은 '퐁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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