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혹한이 훼방놓은 洪川九景 부부 순례

락운강촌 2009. 1. 16. 22:58

  

혹한이 훼방놓은 洪川九景 부부 순례

                                                                                               

                                                                                           강촌 김락운

 직장에서의 배려로 국토 순례 일정이 잡혔을 때

며칠간이나 장소를 물색하느라 주요 명승지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던 중

문득, 과연 내가 태어난 곳이나 제대로 가 보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어려선 학교 다니느라고.. 자라선 고향 떠나 객지생활 하느라고

어느 옛날 가수가 부른 홍천팔경(八景) 중 한 곳이라도 제대로 가 보았던가?

고향이 홍천이라고 하면 누구나 거기에 뭐가 유명하고 뭐가 맛있다고들

나열하는데 정작 나는 오히려 생소해 하지 않았던가?


* 강원도 홍천군은 10개 읍·면에 산재한 산·계곡· 문화유적을 잘 조성해 홍천 구(9)경으로 선정하였음.

순 서

소재지

 간  략  한  소  개

1경

팔봉산

서면 팔봉리

팔봉산은 해발 302m의 낮은 산이지만 기암괴석이 산허리를 감싸고 흐르는 맑고 깨끗한 홍천강 물이 넓게 펼쳐진 백사장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하고 있는 곳

2경

가리산

두촌면 천현리

해발 1051m의 가리산은 산 정상에 서면 탁 트인 시야와 발 아래로 펼쳐진 소양호의 풍경이 등산객들의 발을 묶는 곳

3경

미약골

서석면 생곡리

원시림의 용천수 400리 홍천강의 발원지임. 높은 산과 깊은 계곡으로

둘러싸여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

4경

금학산

남면과 북방면 경계

금학산은 해발 652m로 정상에 오르면 태극문양의 노일마을을 조망할 수

있는 명산임. 백두대간에서 오대산을 거쳐 영서내륙 한강변까지 깊숙이

뻗어 내린 한강기맥의 끝자락 장락산맥이 한눈에 들어옴. 낮은 산이지만

산정으로 오르는 등산코스가 다양하고 400리 홍천강변 최고의 절경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서 유명

5경

가령폭포

내촌면 와야리

자연 속에 숨겨진 오지의 백암산 1099m 서남쪽 기슭에 숨어 있으며

개령폭포라고도 불림. 가령폭포는 최근 생태체험 등산 동호인들이 찾으면서 알려지기 시작한 백암산과 더불어 우렁찬 굉음을 토하며 50m 낭떠러지를 뒤흔들며 내리꽂는 자태가 웅장

6경

수타사

동면 공작산

화촌면과 동면에 위치한 공작산은 해발 887m로 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홍천군 일대가 한눈에 들어옴. 산세가 공작이 날개를 펼친 모습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임. 또한 홍천읍에서 바라보면 거인이 하늘을 향해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모습인데 여기에 위치한 절이 수타사임

7경

용소계곡

두촌면 천현리

용소계곡은 내촌면 광암리에서 발원하여 두촌면 괘석리를 거쳐 천현리에

이르는 10㎞의 계곡으로 맑은 물과 기암괴석이 조화롭게 펼쳐져 있는 곳

8경

살둔계곡

내면 율전리

계방천과 자운천이 어우러져 만든 곳으로 원시의 비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임.

9경

 삼봉약수

내면 광원리

조선시대엔 실론약수라 불렀으며, 주위에 가칠봉, 사삼봉, 응복산의 세

봉우리 가운데 위치한다 하여 삼봉약수라 불림. 전국에서도 드물게 수질이 우수해 한국 명수로 선정되었는데 15가지 약수성분이 포함되어 빈혈,

당뇨병, 신경통 위장병에 특히 효험이 있다고 해 각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임


전국 주요 명승지야 오는 4월 직업보도반 때 여유롭게 순례할 수 있으니 

이번 기회에 고향이라도 제대로 익히자고 결심했다.


1.10. 우선 홍천 내촌 우리 집으로 갔다.

장기간 비워두었던 흙집은 너무나 추웠다.

난방이 급선무이기에 아궁이에 장작을 지피고 있는데 앞집 할아버지가

동네 전화번호판과 농협 달력을 건네주러 오셨다.

할머니는 며칠간 친정집 초상을 치르러 가고 당분간 혼자 계신단다.


아내가 떡국을 끓여 쟁반에 받쳐 들고 그 할아버지네 집으로 가다가

그 집 계단에서 넘어져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고 목도 뻐근하고 무릎도 아프단다.


홍천팔경 순례는 주로 도보답사인데 왜 하필 순례기간 첫날에 넘어지냐며

역정을 내니 아내는 혼자 계시는 할아버지에게 따끈한 국 한 그릇 갖다드리려다

넘어졌는데 칭찬은커녕 왜 짜증이냐며 되레 화를 내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나보니 영하 20℃? 하여튼 올 겨울 들어 가장 춥단다.

아내는 몸도 아프고 나갈 생각 없다고 버티고.....

어쩔 수 없이 순례 계획을 급변경하여 가까운 데라도 가자고 합의를 끌어내

5경인 가령 폭포로 향했다.

그래서 첫 발을 내딛기는 했다.


홍천에서 44호선 국도 설악산 방면으로 가다 철정검문소에서

철정병원으우회전 해 현리·상남 방면으로 15분 거리인

451호선 지방도로 왼쪽에 가령폭포 입구가 보인다.

하지만 이 폭포는 숲에 가려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폭포로

외부인은 찾기도 힘든 곳이다.


우리는 20년 전에 하룻밤 머문 곳이기에 쉽게

찾아 갔지만 입구부터 

지난번 내린 눈이 아직도 녹지 않고 있어

승용차로는 어림도 없었다.

 

 

 중간쯤 도보로 올라가니 지금은

토지 분할 소송에서 패하여

영업을 중지한 폐가가 20년 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를 반겼다.

- 이 집에서 1박 하면서 한 여름인데도

추워서 솜이불을 덮고 잤던 기억이

생생하다.

 

 

 드디어 가령 폭포!

지만 장엄하던 그 폭포 물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고 웅덩이에는 개구리 밀렵꾼들이 파 놓은

흔적만 남겨 있었으며,

그 아래 개울물 역시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 있었다.

 

 

 









이 폭포는 백암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백암산은 자연속 오지의 산으로 표고 900m를

중심으로 수많은 종류의 산나물과 약초, 야생화가 자생하고 있고 등산로 주변에는

난쟁이 산죽 군락 등 사계절 푸르름과 자연이 잘 보존돼 산새들의 낙원이기도 하며,

해발 950m 어사리덕 작은 산골 샘(약용생물이 나오는 샘)에서 솟은 청정수가 400리 홍천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우리는 추운 날씨를 감안, 감히 이 백암산 등반을 뒤로 미루고 2.5㎞쯤 이격된

내가 태어난 곳 서곡리 여창동에 있는 古 사찰 '쌍계사'로 가려고 했다.


쌍계사는 신라시대 서곡대사가 건립하였고, 절이라기보다는 山寺 정도의 규모이나 

강원도 지정문화재인 동해지상사철불(일반적인 불상의 경우 둥근 얼굴과 이목구비 등

자비성을 많이 담고 있지만 이 불상은 얼굴이 역삼각형을 이룬데다 오뚝한 코와 얇은 입술이

특징)을 보관하고 있는데 고려시대 철기 불상의 중요한 유물로 평가돼 재작년 말

국가 지정문화재(보물) 승격을 요청했었다.


결과가 궁금했지만 폭포 입구 음식점(폭포 쉼터 : 막국수가 유명함) 주인이 도로가

미끄러운데다 중간에 지주가 땅을 팔지 않아 도로 개설이 중단된 곳이 있어

차량으로는 위험하다고 알려 주기에 다음 기회로 미루고 그날은 환자 아내와

혹한 날씨를 감안, 되돌아오고 말았다.


되돌아오는 451호선 지방도로


동쪽으로는 '아홉 살이 고개'라 불리는 고개가 있는데 꼬불꼬불한 길이다.

옛날 결혼식을 올린 새신랑이 3일째 되는 날, 아흔 아홉 굽이 도로개설공사에

끌려가 날짜 가는 것도 모르고 일만 하다 공사가 다 끝나고 돌아오니 태어난

아들이 아홉 살이 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다음 날 아침

날씨는 더 추워져 있었다. 환자 아내가 아니더라도 평소에도 게으른 나부터 

밖에 나가기 싫었다. 아침 겸 점심을 먹으면서 반찬투정을 하는데

아내가 시장가서 반찬거리나 사 오자고 제의하기에 억지로 마트로 나가던 중

갑자기 아내가 저기 보이는 백우산에 갔다 오자고 제의했다.

맘 변하기 전에 착수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등산화도 포기한 채 일반 운동화를

착용하고 백우산 등산에 나섰다.


백우산!

 홍천군 두촌면과 내촌면의 경계에 솟구친 준봉으로서

 강원도 심산유곡의 멋을 한껏 누릴 수 있는 산으로

 겨울에 눈이 내리면 산이 새가 날개를 펼친 것처럼

 보여 白羽山이라고 부른다.

 

북쪽으로 12㎞에 이르는

경수골 계곡이 있고,

여기에는 홍천 9경 중 7경인 용소와

너래소·또랑소·합수나들이소 등 많은 연못과 폭포들이 있어

경관을 이룬다. 


용소 계곡은 겨울에 가보기엔 무리이기에 백우산

정상을 오르기로 택하였다.

 

 가족고개에서 출발하여 주능선을

따라 오르는데 얼마나 미끄러운지

몇 번이나 넘어지면서 운동화

차림으로 온 것을 후회했다.


 

계속 오르막길이라서 숨이 가빠 하늘을 보니 전망대

못 미쳐 참나무에 겨우살이가 보였다.


 이 겨우살이는 모 해군 간부가 위암 말기로 병원 치료를

 포기하고 시한부 인생을 살던 중 이 약초를

다려 음용하여 완치됐다는 소개로 아내의

암 수술 후 지금까지도 음용하고 있는데


재작년인가 TV를 통해 암 예방을 비롯 각종

성인병에 좋다고 서양에서

연구되었다는 보도 후 너도나도 채취하어

작년부터는 채취하다 적발되면 벌금이

엄청 부과된단다.


정상을 오르기 전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내가 다닌 초·중학교 소재지인 내촌면 도관리가 훤히 보였다.


옛날 내촌면 도관리 백우산 기슭 '매지골'이라는 마을에 최맹삼이란 어질고 착한 농부가 

살고 있었고 부인 허을란과 금슬 좋은 부부였지만 나이 오십이 넘도록

자식이 없던 중 설악산으로 간다는 늙은 스님이 찾아와 시주를 청하여 강낭콩을

넣은 밀범벅을 대접한 후 농사지은 콩을 한 되 독에서 떠다가 시주했단다.


그 후 부인의 몸에 태기(胎氣)가 생겨 드디어 아들을 낳았는데 백 일이 지나기도

전에 기운이 장사였고 더욱 이상한 것은 밤마다 살그머니 나갔다가 자정이

지나서야 옷이 땀으로 흠뻑 젖은 채 들어오기에 몰래 미행을 해보니

어린 아이는 칼을 들고 무술 연습을 하고 있었단다.


집으로 돌아온 부부는 방바닥에 엎드려 밤새도록 남 몰래 통곡했으니

그 당시에는 장수를 낳으면 나라에 화를 입힌다고 하여 아이가 성장하여 힘을 

쓰기 전에 부모의 손으로 죽여야 했다.


장수 아이에 관한 소문은 널리 퍼져 원주에 있는 監營에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어느 비 내리는 밤, 뇌성은 천지를 뒤흔들고 번개 불이

쉴 새 없이 번쩍일 때 부부는 굳게 마음을 다지고 잠자는 아들의 몸 위에

콩 두 가마니를 얹었으나 아들은 움직이지만 못할 뿐 두 눈이 말똥하여 저주하는

눈으로 부모를 쳐다보고 있어 한 가마니를 더 얹어 장수 아이를 죽이고 말았다.


장수가 죽자 장수를 따라 나타났던 용마가 울며 헤매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지금도 도관 2리에 「우렁골」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 용마가 울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쉴 바위」라고 불리우는 5평이 넘는 큰 바위가 있는데 장수가 쉬었던

바위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 곳에서 3km 떨어진 곳에「약세」라는 곳이 있는데 용마의 죽통과 말 발자국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다고 한다.


장수를 모실 수 없게 된 용마는 슬피 울면서 헤매다가 크게 한번 뛰어 영월 땅에 떨어져

죽어 영월에는 용마의 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그 장수 아이가 정말 나라에 화를 입혔을 것이라 믿고 싶지 않기에 주민들은

전설이지만 지금도 안타까워한다고 한다.

 

 드디어 백우산 정상!

 

 

 

 

 

 

 

 

 

 

 

 

 

 정상에 올라 망설였다.


계곡산행! 북쪽 기슭으로 장장 12km나 되는 경수골로 깎아지른 기암절벽과 협곡인 

용소, 합수 나들이소, 너래소 등에 'S'자 굽이로 돌고 돌아가는 계류 주변에는

마치 부채를 펼친 듯한 부채 바위,하늘을 향해 치달아 오르는 천상바위 등

기암절벽이 즐비하다지만 이 계곡을 제대로 느끼려면 하루해가 짧기에

유혹을 뿌리치고 올라왔던 오솔길을 더듬어 다시 내려갔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이 더 힘들었다.

가파른 눈길에 몇 번이나 자빠져 서로 깔깔대며 웃다보니 4시간이나 지나

이미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에게 혹한 속 운동화 차림 등산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날씨 핑계가 아니라 미끄러지면서 충격당한 온 몸이 두들겨 맞은 듯

뻐근하여 아쉬움을 안고 홍천 九景 순례를 포기한 채

서울로 되돌아오는 길,


두촌면 철정을 지나면서 아내에게 철정의 전설을 얘기해 주었다.


고려 때 아주 가난하게 사는 집,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들 둘의 네 식구가

살았는데, 아버지가 젊어서 돌아가셔서 어머니는 일찍 혼자가 되었단다.


그런데 이 두 아들은 밤만 되면 어머니가 집을 나가시는 것을 보고

수상하여 미행해 보니 어머니는 겨울인데도 버선을 벗고 찬 개울을 건너 이웃집

남자에게 가는 것이었다.


아들들은 화가 나다가 어머니가 살어름 냇물을 건너는 모습이 불쌍하게 여겨져

나무로 다리를 놓아 드렸는데....

아버지한테는 불효였지만 어머니한테는 효자여서 孝不孝 설화라고 한다.

옛날 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채 부인을 얻어달라고 했을 때 못 들은 척 무시했던

생각이 났다. - 아버님, 불효자식을 용서 하소서! -


다시 홍천 시내도 경유하여 며느리고개 터널을 지나면서 아내는 며느리고개

전설을 아느냐고 묻는다. -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니 아내가 대충 얘기해 준다-


옛날 어느 해 봄날에 고갯길을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나귀 등에 짐을 싣고 넘고

있었는데 수목이 울창한 성황당 쯤에 이르렀을 때

시아버지는 나귀 등에 얹었던 짚신 꾸러미가 없어진 것을 보고 며느리에게

“아가야, 짚신을 잃어버렸으니 내가 찾아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고 있거라”하고

나귀를 돌려세워 고개를 되돌아 내려왔으나 짚신은 없었고....


부랴부랴 며느리가 기다리는 곳으로 되돌아 왔지만 며느리가 없었다.

해 저문 골짜기를 향해 “아가야, 아가야”하고 목이 터져라 불렀지만 애절한

산울림만 돌아올 뿐 어둠이 깔린 고개는 조용하기만 했다.


시아버지는 발길을 돌리려고 나귀 고삐를 잡아 당겼으나 이상하게도

나귀 발굽이 떨어지지 않아 할 수없이 나귀를 남겨 두고 고갯길을 넘어왔는데

그 후부터 혼사를 치르러 가는 행렬이 이 고개 마루턱에 이르면 나귀 발굽이

떨어지지 않거나 며느리가 갑자기 사라진다고 전해 온단다.


이런 연유 때문에 사람들은 가까운 거리인데도 이 고개를 넘지 않고 60리 길을

빙 돌아서 다녔다고 한다. 


방방곳곳 어디인들 전설 없는 곳이 있으랴.

홍천에는 이 밖에도 계영배의 유래, 삼마치의 전설, 양구데미, 이괄암의 내력,

학명루의 유래, 이소의 효행, 한천자 부친묘소, 남산시신, 쌍계사의 유래, 권대감과

칡 이야기, 금강산 마적떼, 여산신과 산삼이야기, 용두안의 기이, 망정소 이야기,

정 효자각 전설, 박효자 전설 등이 전해지고 있다.


이번 홍천九景 순례는 혹한과 아내 부상으로 결국 시도하다 포기했지만

반평생 살아오면서 나 태어난 곳도 제대로 모른 채

여행 하면 먼 곳부터 찾거나 이역만리 외국 여행이나 기웃거리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 아주 소중한 기회였기에

다시 한 번 이런 기회를 부여해 준 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번에 못 다한 홍천9경 여행은 직업보도반 기간 중 답사하여

추후에 소개드릴 것을 약속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