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놀이(전편)
락운강촌
1. 우연한 만남
엊그제 하루 종일 비가 왔다.
농촌에서 비가 온다고 휴식을 취하는 건 아니다.
비가 오면 또 비가 오는 대로 더 바쁜 경우도 많다.
비가 많이 오는지 적게 오는지도 모르겠고.....
이곳은 일기예보도 잘 맞지 않는다. 예보 자체도 잘 안 맞아 지탄도 많이
받지만 특히 이곳은 강원도 영동지방 기후와 영서지방 기후를 짬뽕하여
정말 지 맘 대로다.(꼭 오락가락 제주도 날씨처럼)
아내가 요양차 도시로 떠나기 전에 해 놓은 반찬도 거의 바닥나 있고,
해 놓은 밥도 다 먹어 이제 새로 하기도 귀찮은데
배에서는 어김없이 점심때임을 힌트 준다.
시오리 떨어진 내가 태어나 자란 고향집으로 향했다.
사십여 년 전 나 살던 옛집이다.
밥 차려 줘야 할 형수는 어디 가고 고관절 환자인 형님 혼자 계신다.
점심 먹자니까 아직 한 시도 안 됐는데 무슨 점심이냐며 들은 척도 않는다.
(난 아직도 군대에서 12에 점심 먹던 버릇 그래로인데.....)
집 주변이나 살펴보니 여전히 개살구는 가지가 찢어질 듯 달렸지만
처음 보는 노란꽃 등 수십 년이 지난 세월답게 많이도 변했다.
어린 내가 뛰놀던 주변 산과 들은 구획정리에다 숲이 우거져
옛 흔적조차 없다.
저 앞 작은 야산... 지금이야 작게 보여 야산이지만 어렸을 적 나에게는
오르기 힘든 절벽이었고 진달래 따 먹다 굴러 떨어졌던 추억어린 높은 산이다.
흔히 미운 일곱 살이라고 하듯이
어릴 적 나에게는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아 늘 외톨이였다
강원도 내에서도 가장 외딴 산골 동네.
이곳은 산이 높아 해가 늦게 떠서 오후에 일찍 진다.
봄도 늦게 오고 가을이자 곧 겨울인 이런 산골짝 동네에서 태어 난데다
그나마 우리 조그만 동네마저 저만치 보이는 끝까지도 가보지 못한 채
겨우 태어난 집을 중심으로 반경 몇 백 미터 범위 안에서
나는 늘 혼자 놀고 있었다.
부모님들은 겨우 먹고사는 보잘 것 없는 농사를 지으면서도 왜 그렇게나
바쁘셨는지 작은 아들이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할 정도까지 커버리자
다 컸다고 여기는 양 아예 방임하다시피 하고 있었으며,
그런데도 모험심이 강한 어린이답지 않게 저 건너와 등선너머에
꽤 많은 또래들이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저 순진하고 멍청하게 산과 들을 쏘다니며
아무런 의미도 없이 그렇게 커가고만 있었다.
개나리는 개울가에서 샛노랗고, 진달래도 온 산을 연분홍으로 물들이고
온갖 나비와 벌들이 이 꽃 저 꽃 바람둥이처럼 맛만 보며 휭휭 날고 있는
그야말로 화창한 봄 날
앞산 진달래 숲이 좋아 강아지 ‘마루’와 함께 요리조리 헤매고 있다가
평소에는 여자애라서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덕순이와 마주치고야 말았다.
지금은 흔적도 없지만 저기 저곳에도 초가집 한 채가 있었는데
그 집 사랑방에 이미 지난 초겨울부터 이사 와서 살고 있었지만
당시 덕순네는 소작농으로 얼마나 가난했던지 아부지 어머이, 덕순이 덕보
또 세 살짜리 아기 등 다섯 식구가 방 한 칸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그런 집 맏딸이고 나보다 한 살 더 많은 덕순이는 늘 짧은 검정 치마
노랑저고리에 묵은 때가 찌들어 전형적인 시골 계집애 몰골을 하고 있었고
더구나 항상 아기까지 업고 있어서 나는 선뜻 다가가고 싶지 않아 먼발치에서
그냥 소 닭 보듯 관심 없이 지나고 있었는데
그 덕순이와 진달래 숲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된 것이다.
그냥 지나칠 수가 있었는데도 왠지 나도 모르게 걸음이 멈추어졌고,
순간의 침묵을 못 견딘 덕순이가 먼저 말을 건네 왔다.
(그래도 커다란 눈에 새까만 눈동자로 말똥말똥 내 눈치를 보면서)
" 얘! 저기 우리 뒷산에 좋은 방공굴(6·25때 피난용으로 사용하던 방공호)이 있는데
같이 가서 놀래?"
" 거긴 어둡고 무섭지 않니?"
" 아냐, 거기 숨어서 놀면 아무도 몰라."
나는 음습한 굴에는 뱀이나 어머니가 들려주던 옛날 얘기 속 여우나 늑대 같은
무서운 짐승이 살고 있지 않겠느냐는 걱정에서 선뜻 내키지 않다는 뜻으로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덕순이는 아마 남녀 어린이가 함께 놀면 어른들한테 혼나는
당시의 남녀칠세 부동석 환경에서
그 방공호에 숨어서 놀면 안심해도 된다는 뜻의 대답이었다.
그런 동문서답이었는데도 우리는 뜻이 통하였는지 아니면 딱히 다른 할 놀이도
없어서인지 곧장 그 방공호로 달려갔다.
하지만 음습할 것으로 짐작했었던 그 굴의 입구에는 햇빛이 따스했고
굴 안에는 이미 덕순이가 며칠 동안이나 혼자서 말끔하게 정돈하고 몇 개의
이빨 빠진 그릇과 버려진 무쇠 종발, 무뎌진 사금파리, 그리고 예쁜 돌멩이
수십 개 등 소꿉놀이 도구들을 엄청나게 갖추어 놓고 있었다.
(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다니?....)
" 얘! 우리 소꿉놀이 하자,
너는 남자니까 아부지하고 난 어머이 해야 하는데
아부지 어머이는 혼례식을 치러야 되는 거래."
" 혼례식? 나 그런 거 한 번도 못 봤어. 어떻게 하는 건데?..."
" 어제 저 아랫집 숙자 오빠네 잔치 때 못 봤어?"
" 우리 아부지는 그런 잔치 집에 못 가게 해서 못 가봤어."
그랬다.
우리 아버지는 동네 결혼식이나 환갑잔치 등 행사 때마다 과방장(잔치 음식을 쌓아
놓은 과방의 임시 책임자로 음식 주문을 받아 음식을 내어 주는 일을 하는 사람)일을 도맡아
수행하고 있었는데
당시 못 먹던 시절 수많은 아이들이 과방장에게 과자 좀 달라 떡 좀 달라
졸라대고 있었기에 그 틈에 자신의 자식들이 끼어서 먹을 것 달라고
손 내밀면 줄 수도 안 줄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가 된다면서
아예 잔치 집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는
대신 집에서 송편이나 인절미를 만들어 주고 있어서 당시 시골 동네에서
연 대여섯 번씩 치르던 전통 결혼식이나 장례식 한 번 못 보고 자랐고
바로 전날 100미터 떨어진 가까운 아랫집에서의 잔치인데도 가보지 못했었다.
" 그럼, 누나가 가르쳐 줄게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 근데 니가 왜 누나야? "
" 야, 넌 일곱 살이고 난 여덟 살이니까 내가 누난 거야, 임마!"
" 여덟 살이면 학교 다녀야 하는데 왜 안 다녀?
" 어머이가 올해까지는 이 아기 봐야 한다면서 내년에나 학교 가라고 한 거야."
" 그래도 난 누나라고 하기 싫어!"
" 싫으면 누나라고 안 불러도 돼. 그런데 니가 신랑은 해야 돼."
" 그럼 니가 내 각시야?"
" 응. 아, 아니다. 내일 혼례식을 치러야만 그런 거야."
" 혼례식? 그거 오늘 하는 거 아니고 내일 해?"
" 응. 오늘은 내가 이 아기(동생)를 업고 있어 못해.
내일은 엄마가 아이 데리고 병원에 예방주사 맞히러 간다고 했거든.
그래서 내일 하려고 하는데 너네 집에 아부지 술 있지? "
" 응. 아부지가 매일 마시는 거 있어."
" 그거 작은 주전자에 담아서 가지고 와!"
" 에이∼ 그러다 들키면 클나(큰일 나)."
" 야! 아부지 어머이 일 나갔을 때 몰래 갖고 오면 되는데 그것도 못해?
나도 어제 숙자네 잔치 때 어머이가 얻어다 감춰놓은 떡하고 과자 가져올게."
" 혼례식에 떡, 과자, 술, 그런 거 있어야 해?"
" 그럼. 그런 걸 차려 놓고 신랑하고 각시가 양쪽에서 네 번 절하고 술을
서로 주고받아 먹는 거야. 내가 어제 똑똑히 봤어."
덕순이는 당연하다는 듯이 꼭 그런 게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다음 날 난 정말 순진하게도 덕순이가 시키는 대로 감히 도둑질을 하고 있었다.
부엌에서 작은 주전자를 찾아 밀주(옛날 시골에서 술 조사꾼 몰래 빚어 먹던 막걸리)를
담아 방공굴에 가려고 여기 저기 찾았으나 아무데도 술은 없었다.
(항아리 안에 걸려내지 않은 채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부뚜막 위에 놓여 있는 사발 뚜껑을 열어 보니 거기에 술이 있었다.
손가락으로 살짝 찍어 맛을 보니 달착지근 했다.
(어머이가 막걸리를 걸러내고 그 남은 찌게미에 다시 물을 부어 사카린 몇 알을 타 놓았다가
일 끝내고 돌아와 목마를 때 마시려고 마련해 놓은 이른바 짝퉁 단술)
덕순이와 나는 방공호 앞에 서 있는 꽤 큰 바위 위에다
납작한 돌과 이빨 빠진 그릇에 떡과 과자,
그리고 물 한 바가지까지 가지련하게
제법 정성스레 차려 놓고
바위 양쪽에 서서 서로에게 네 번 절하고 주전자에 담아온 술을 나누어 마시면서
드디어 신랑각시가 되는 혼례식을 치렀다.
아무 축하객들도 없었고 주례도 없었다.
하지만 소나무, 갈나무, 진달래, 벚나무, 그리고 새들과 벌 나비들이
모두 다 지켜보았다.
비록 어른 흉내를 낸 소꿉놀이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우린 스스로 부부가
된 것이었다.
" 야, 술이 원래 이렇게 달은 건가봐."
" 아부지 술이 아니고 어머이 술이라서 그걸 거야.
우리 어머이는 단 것을 좋아 하거든."
" 맛있다. 우리 이거 다 마실래?"
“ 우리 아부지 술 마시면 좀 이상해지던데 우리가 이거 다 마셔도 괜찮을까?”
우리는 주전자에 담아온 사카린 탄 술 한 사발(옛날 사발은 지금의 밥공기 서너 개
크기였다.)을 진달래와 과질(쌀반죽을 불에 달군 자갈돌에 튀겨
조청을 발라 쌀강정을 바른 옛 과자)을 안주삼아 홀짝 홀짝 다 마시고 말았다.
물론, 내가 염려한대로 결코 괜찮지가 않았다.
비록 어른한테는 술 찌게미를 걸러낸 싱거운 맹물이겠지만
일곱 살짜리 우리들에게는 위험한 독약이었다.
" 저 아기 포대기는 머야?"
" 이 바보야! 신랑각시가 되면 같이 자는 거야!
그래서 덮고 자려고 갖고 온 거야."
" 너하고 나하고 진짜 같이 자는 거야?"
" 너 아부지 어머이 같이 자는 거 못 봤니?"
" 그치만 우린 진짜 어른이 아니잖아."
" 너 정말 이리 안 오면 내 신랑 안 할 거다!"
덕순이가 화를 내니 난 어쩔 수 없이 커다란 소가 고삐에 이끌리듯
마지못해 따라가고 있었다.
" 알았어. 누울게.."
마지못해 덕순이 옆에 누웠지만 나는 정말 자는 척 하려고만 했었다.
그러나 얼마 못가 술에 취해 몽롱해지고 있는데
덕순이도 희미해져 가는 목소리로 뭘 자꾸 물어 보곤 했다.
“ 너네 아부지 어머이는 어떻게 자니?”
“ 그냥 드러누워 자지 머. 우린 웃방에서 따로 자기 때문에
아부지 어머이가 어떻게 자고 있는지 못 봤어.”
" 방이 따로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린 전부 한 방에서 자거든.
첨엔 우리 아이들이 가운데서 자고 어머이 아부지는 양쪽에서 자는데
우리가 잠들면 아부지가 어머이 옆으로 기어 오고 둘이서 꼭 껴안고 자더라.
나는 방공호 천장이 내려앉는 듯하다 다시 멀쩡해지며
눈은 게슴츠레 마냥 졸리는데 덕순이가 또 꽥 소리를 질렀다.
“ 야! 너도 이제 내 신랑이 됐으니 이리 와서 나를 껴안고 자!"
" ?...............?"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고 멍하니 있자 덕순이가 나를 억지로 끌어당겨
꽉 안아 주었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내 엉덩이를 당기고 한참 있다가 다시 놔 주더니
왼손으로 내 사타구니에 손을 뻗어 감히 내 잠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덕순이는 왼손잡이였다.)
전편 2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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