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가 미웠던 이유
강원도 ‘감자바위’라고들 한다.
그만큼 우리 지역에서는 감자가 많이 생산된다.
강원도 촌놈이기에 어렸을 때 감자를 많이 먹었다.
아주 많이 먹었었다. 밥에도 감자, 도토리에도 감자....그리고 감자떡,
주식이다시피 했기에 싫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감자가 미워졌다.
그날 이후론 입에서 감자를 거부하여 그 아기 주먹만 한 것을 한입이라도
베어 먹으면 급체하여 죽을 것만 같았다.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교납금을 기한 내 내지 못해 연 이틀씩이나 방과 후 남아서
교실 청소를 해야 했다.
청소야 늘 하던 일이지만 벌칙으로 청소한다는 것은 어린 가슴엔
엄청난 비애이고 충격이었다.
어쩌다 이런 가난한 집에 태어나 이 설움을 겪어야 하는가?!
부모님께 독촉을 했지만 선뜻 줄 수도 없는 그 입장이야 또 오죽했겠는가?
감자를 팔아서 납부하란다. - 팔아서 돈으로 주면 얼마나 좋을까..
일이 바빠서 시장갈 새가 없으니 일요일 장날에 내가 직접 지게에 지고 가
팔아서 교납금을 내란다.- (그러나 못하겠다고 버틸 수도 없는 일)
당시 교납금 640원, 감자 한 말에 70원, 그러니 아홉 말은 지고 가야 하는데
어린 내가 어떻게 그 무거운 감자 9말이나 지고 갈 수가 있단 말인가?
엄마가 따라 나섰다.
우리 母子는 이고지고 십리 오솔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두 시간 쯤이나 걸려
시장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를 어쩔꼬...
감자가 하도 많아 시장에 넘쳐 있었고, 한 말 70원은커녕 50원에도 사려 하지
않았다. 아마 거저 준다면 몰라도 모두 외면했다.
못 팔면 안 된다. 교납금 못 내면 또 청소다.
우리는 곡물 장사꾼이 아닌 장터 이집 저집을 직접 찾아가 제발 좀 사 달라고 졸랐다.
하지만 아무도 안 사 줬다. 공무원집도, 구멍가게도, 영업집도.....
(감자는 더욱 무겁게 어깨와 등짝을 내리 누르는데... 시간은 자꾸 가고...)
울고 싶었다. 아니 이미 속으론 입술을 깨물면서 울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된다. 십리 길을 이고 지고 왔는데...
그러다가 어느 좀 여유가 있어 보이는 집에까지 갔다.
“계십니까? 감자 좀 사요∼!"
누군가 문을 열고 "안 사요!"하고 외치고는 얼른 문을 닫는다.
앗! 저게 누군가? 우리 반 ?순이가 아닌가?
어머니가 다시 외친다. - "멀리서 왔는데 좀 사주세유, 예∼"
다시 그 얘가 문을 열자마자 내 눈과 마주친다.
"안 산다니깐 왜 자꾸 귀찮게 굴어요! 빨리 나가욧!"
땀에 젖어 꾀죄죄한 내 지게 진 모습에 내가 봐도 얼마나 부끄럽든지..
다리는 주저앉으려 하고, 목이 메어 '엄마 그만 가자'는 말도 나오다 말고,
엄마를 잡아 끌 힘도 잃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도 저렇게 매정하다니..?!
그 이후부터 그 많고 많은 감자가 미웠다.
감자만 보면 매정했던 ?순이가 자꾸 떠올랐다.
- 사실이야 살 사람이 안 산다는 것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필요 없어서
안 산다는 건데...나한테 미움 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난 그 동급생이 미웠다.
통통해서 귀엽기만 했던 그 얘였었는데
아예 통통 내지 뚱순이들까지 다 싫었다.
알 수 없는 감정, 어떻게 표현할 수도 없다.
하여튼 그 후 한참이나 감자가 싫었다.
그런데 강릉서 친구랑 함께 자취할 때
서리해 온 감자를 밥에 섞어먹었는데 자기는 조금 섞어 쌀밥 많이 먹고
나에게만 감자를 듬뿍 더 떠 주는 그 얄미움.
(왜 그때 내가 식사를 안했는지 그 친구는 이제는 눈치 챌까? 이미 그 당시 눈치채고도 모른 척 했을 거다.)
그런 감자를 다시 먹게 된 건 군대 훈련소 가서다.
때마다 나오는 갑자 국. 그거라도 안 먹다가는 쓰러져 죽는다. 영양 실조로.......
그때엔 ?순이도 비슷한 뚱순이도 생각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우스갯소리지만 성년에 이르러 이성들을 접하면서
처음엔 날씬이들만 눈에 들어왔었지만
지나고 보니 뚱순이가 더 좋다는 것도 점차 알게 되었다.
이제야 어릴 적 추억으로 간직되는 감자와 관련한 추억의 한토막
그러나 정말 한참이나 가슴에 박힌 못을 뽑지 못하였음은 사실이었다.
지금쯤 그 ?순이는 아줌마를 거쳐 후덕한 할머니가 돼가고 있지나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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