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 보호에 대한 유감
김영호
군 복무 중이던 때의 옛 상관이 나에게 다가 오더니
다짜고짜 나의 머리 부분을 때리려 했다.
맞을 이유가 없는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오른 손을 왼 손으로 붙잡아
방어했지만 그는 나머지 왼 손으로 나를 기어코 가격하려 했다.
그 순간 나 역시 오른 손으로 그의 손목을 꽉 붙잡아 기어이 방어했다.
그의 양손과 나의 양손이 힘겨루기에 돌입했던 것이다.
그의 양손을 놓치면 맞아 죽을 지도 모른다는 위기에 직면하여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그의 양손을 붙잡고 한동안 버텼지만
아뿔싸! 그는 왕년에 유도 선수 출신 꼭 멧돼지 닮은 거인이었다.
내가 끝내 무너지는 순간
아! 그 위험한 장면은 다행히도 꿈이었다.
우리 집에는 장작(통나무를 길쭉하게 잘라서 쪼갠 땔나무)으로 난방하는
부엌이 있다.
겨우내 그 부억 아궁이의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뒷 야산에서 톱질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김씨!∼ 김씨~!’하고 부른다.
내가 김 씨이지만 나는 들은 척도 안했다.
(이 동네에 온지 2년이 다 되었지만 누구도 나를 김 씨로 부르지는 안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김씨!∼ 김씨~!’또다시 불렀다.
긴가민가하면서 '예!' 대답하니 빨리 오라며 손짓했다.
아저씨를 따라가 보니 가파른 언덕 저 아래서 올무에 걸린 멧돼지를
치켜 올리며 나에게 앞다리를 붙잡고 끌어 올리란다.
얼떨결에 그 멧돼지의 두 팔(앞다리)을 붙잡아 끌어 올렸다.
아! 이래서 간밤에 그 돼지 같은 상관의 두 팔을 붙잡고
힘을 쓴 것이구나!
아저씨를 도와 그 멧돼지 몸뚱이를 조각내 해체하면서
불쌍하다는 연민 대신 '지난 여름 우리 앞마당 옆에까지 침입,
덜 익은 고구마까지 마구 캐먹은 멧돼지에 대한 얄미움에
숫돌에 대여섯 개의 칼을 갈아 아저씨에게 번갈아 건네주었다.
내가 건네주는 칼로 아저씨가 멧돼지를 부위별로 토막토막 잘라내고 드디어
간을 쪼개어 숯불에 구워 주변 주민들과 함께 술안주로 삼으려는 순간!
(멧돼지는 야생동물 보호법에 의해 보호되는 야생 동물이고 먹는 자도
1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 벌금을 받게 되는데...... )
결국 500만 원짜리 이 한 점의 멧돼지 고기를 씹어 먹어야 하는 건가?
이 얼마나 비싼 대가인가?
하지만 대한민국 법도 현실적으로 잘못되었다면 구태여 '악법도 법'이라면서
굳이 따른 필요가 있겠는가?
그렇다!
도심지에까지 출몰하여 선량한 시민들을 해치는 것은 물론
그 많은 농작물을 훼손하여 수많은 농민들의 가슴을 멍들게 하는
이놈들을 언제까지 악법도 법이라 우기면서 보호해야 한다는 건
분명 잘못된 것이다.
멧돼지 피해를 줄이겠다고 농지에 울타리를 쳐 봐도
시중에서 판매하는 5mm 와이어까지도 끊어내는 멧돼지에겐 아무 소용이 없고
특히 일본에서의 시험 결과 전기 목책도 2년 후엔 학습효과로 인해
멧돼지는 금방 별것 아님을 알아채고 막무가내로 농지를 휘젓는단다.
이를 감안하여 일정기간 일정 지역에 사냥꾼들에게 포획 허가를 내주어
멧돼지 사냥을 하게 해 주고는 있지만 그것도 밤 열시 이전까지만
허용(남원 순창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하고 있어서
열시 이후에 주로 활동하는 야행성 멧돼지를 아예 잡지 말라는 것과 같단다.
물론 멧돼지가 이다지도 극성을 부리는 현상은 서식지의 감소에서
그 원인이 있다는 의견도 있고, 실제로 최근 수년 동안 '개발'이라는
명목아래 엄청난 산림이 사라졌고,
멧돼지가 좋아하는 구근류는 뿌리도 내리기 전에 들쑤셔 놓으니
멧돼지 저도 못 먹고 사람도 못 먹는 꼴이 되어 버렸다.
그나마 고라니는 잎사귀를 뜯어먹으니 종종 농장출입을 하여도 허기를
면하고 갈 뿐이지만 멧돼지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
어미가 농작물을 쓸고 간 뒤 주렁주렁 따르는 새끼들이 싹쓸이 해버린다.
농사도 개판, 야생동물도 배고픈 현실.
야생동물용 농사를 짓던지 아니면 좀 안됐지만 야생동물 개체수를 줄여야 하는데
현재같이 어정쩡하게 야생동물 보호한답시고 있다가는
야생동물도 농민도 서로 피해만 보면서 갈등만 증폭되고 만다.
또 하나의 파생된 갈등.
한 동네에 허가된 사냥꾼(이들에겐 야생동물 보호법 위반자 적발
임무도 부여되어 있음.)들이
올무로 한두 마리 잡는 이웃을 고발 하는가 하면
자신들의 사냥개가 올무에 걸려 죽었다면서
올무 설치 사실을 신고 안할 테니 개 한 마리당 700여 만원씩 내 놓으라고 윽박질러
사이좋던 주민 사이가 원수지간이 되기도 한다.
이 무슨 황당한 현상인가?
몇 년 전 뉴스엔 멧돼지로 오인, 동료 사냥꾼을 엽총으로 쏴 죽이기까지
하였단다.
이래도 멧돼지가 과연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하다못해 탁상공론으로라도 사회적 이슈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짝 잃고 와병중인 가난한 노인의 고독에 대하여 (0) | 2017.08.26 |
---|---|
감자가 미웠던 이유 (0) | 2013.12.30 |
우리집 정원 9월의 메모 (0) | 2011.09.29 |
야외에서 해충에 물렸을 때 응급처리 요령 (0) | 2011.08.12 |
[스크랩] 아둔한 하급 군인의 의문들 (0) | 2011.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