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가래올 전원일기 20 】도무지 해몽 안 되는 그녀와 관련 이상한 꿈

락운강촌 2009. 7. 10. 23:16

 

락운의 가래올 전원일기 (20)

가래올 락운


♡ 도무지 해몽 안 되는 그녀와 관련 이상한 꿈


 1년 후배인 그녀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고 그야말로 서로가 무관심하여

9년 동안 같은 초등 · 중학교를 다녔어도 말 한 마디, 인사 한 번 오간 적 없었다.

(목례 정도는 했었나?  그 마저도 기억에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도 총각 때인 어느 날 밤.

꿈속에서 그녀와의 인연이 생기고 말았다.


친구들이 무슨 파티를 연다기에 갔더니 느닷없이 그녀와 나 우리 둘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파티가 진행되고 있었다.

영문도 모른 채 생일 축하 비슷한 폭죽과 오색 꽃가루를 맞고 나서는.....

그제야 우리가 무슨 축하를 받는 거냐고 겸연쩍게 물어보니

“ 너희들은 어차피 맺어져야 할 커플이니 우리가 예혼식(豫婚式)을 치러 주는 거다.”

그녀도 물었다.

“ 예혼식이 뭐야?”

“ 약혼식은 양가 부모들이 해 주는 거고 예혼식은 양측 친구들이 약혼 전에

  해 주는 거야.”


우리는 하도 어이가 없어 멍한 상태에서도 친구들 하는 짓을 굳이 만류하지 않고,

그들의 의식대로 마지못해 따라 주었다.


의식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그녀에게 어쩔 수없이 말을 걸게 되었다.

“ 이거 예혼증서인지 뭔지 하고 무슨 앨범 같은 거 챙기지 않고 떠나기에

  내가 가져 왔어요. 자, 받으세요.”

“ 저 그런 거 필요 없어요. 우리가 언제 그런 거가 필요한 사이였나요?

  그쪽에서 그냥 다 가지세요.”

“ 아, 저도 필요 없는데... 그럼 우리 저 잣나무 밑에다 일단 파묻어 놓았다가 혹시

  후에 필요해지는 일이 생기면 다시 가져가기로 하죠.”

“ 묻어두든, 가져가든 맘대로 하세요.”

그녀는 마치 나를 범행(?) 장본인으로 여기는 양 토라져 있었다.


그 꿈을 꾸고 나서 ' 별 이상한 꿈도 다 있네...'하고는 관심도 없이

통상 개꿈은 금방 잊어버리듯이 아예 잊고 살아왔다.

아마 평소 내가 그녀에게 무슨 매력이라도 느꼈더라면

총각 때인 만큼 다음 날부터라도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고나 최소한 지금은

뭐하고 있나 등 뭔가 액션을 취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매력 같은 건 전혀 느끼지 못했고,

그저 한 동네에서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었으며,

더구나 서로가 끌리는 이성이 따로 있었기에 아예 서로에겐 무관심이었기 때문인지

그런 꿈조차 기억에 없었는데, 이게 어찌된 영문인가?


결혼은 당연히 이미 했고, 많은 세월이 흘러 이젠 자식들이 짝을 찾아 즐기고 있는 지금...

삼십오륙 년이나 지나 늙을 준비를 하고 있는 지금 이때에

그 꿈이 다시 이어져 꾸어질 줄이야..


며칠 전 꿈속에서 나는 그 옛날 친구들이 증정해 준 예혼증서와 앨범을 찾으러

그 잣나무를 찾아갔다.

그 잣나무 아래 내가 파묻은 장소가 지금은 콘크리트 포장길로 변해 있는데도

꿈속에서는 예전 그대로 비포장 오솔길 옆 그대로였다.


무슨 호미 같은 것으로 파고 있는데 누군가가 삽을 건네주기에 얼른 받아서 열심히 파냈다.

내 몫으로 받은 예혼증서와 앨범을 찾아 꺼내고 나서 삽을 건네 준 사람이 누군가

올려다보니 바로 그녀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실제로 그녀를 만났다면 꽤나 놀랬어야 하는데 꿈속에서는 마치 만날 사람을

당연히 만난 듯 힐끗 처다 보고는 그 물건들만 챙겼다.

비닐 포장이 되어있는 앨범 안에는 실제로는 전혀 찍은 적도 없는 그녀와 함께 한

사진이 들어있는가 하면 카세트테이프 한 개도 들어 있었다.


목차를 보니 내가 고교 밴드부 시절에 트럼본으로 연주한 ‘베사메 무쵸’와

‘하모니카로 연습한 ‘베토벤 작품 8번 세레나데’가 녹음되어 있었다.

('친구들이 언제 이런 걸 다 만들었지?'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다 그녀가 기다리고

있음을 의식하고는)

“ 잠깐 있어 봐요. 그 당시 내 거로부터 열 발자국 앞에다 묻었으니까 금방

  찾아 줄게요.”(꿈속에서는 그녀도 그걸 찾으러 온 것으로 아예 단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그녀 몫의 증서와 앨범은 없었다.

한참 동안 애가 타서 여기저기를 파고 있자 그녀가 그냥 가려고 했다.

나는 우선 내 것을 가져가라면서 건네주었고.....

그녀는 말없이 받아서 뚜벅뚜벅 멀리 사라졌다.


이제 찾아야 할 그녀의 것이 내 것이기에 당시 묻은 곳에 대해

기억해내려고 애쓰면서 정말 열심히 찾고 있는데,
아내가 옆에서 나를 흔들어 깨웠다.

“ 뭘 그렇게 식은땀을 흘리면서 중얼거려요?  악몽인 것 같아서 깨웠어요.”

“ 왜 중요한 순간에 깨워? ”

(결국 그걸 찾지 못한 채 꿈이 깬 데 대해 안타까움이 더 했다.) 


이상한 꿈.

어떻게 옛날에 꾸었던 꿈을 이어서 꿀 수 있을까?

어떻게 친구들은 전혀 만나지도 않는 그녀를  나의 커플이라고 단정하면서

예혼식이란 걸 마련해 주었을까?

내가 보지 못한... 그녀에게 건네 준 그 증서와 앨범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혹, 불교의 윤회설이 맞다면... 그녀가 내세의 내 배우자가 아니겠는가?

혹시 그녀도 나와 같은 이런 이상한 꿈을 꾸지는 않았을까?


아무리 무시하려 해도 꼬리를 무는 의문과 의혹들.

아무리 잊으려 해도 더욱 궁금해지는 증서 내용과 앨범 사연들.....


나는 

오늘밤도 3차로 이어지는 그 이상한 꿈이 꾸어질 것이란 기대와 함께 

설레임을 진정시키면서 잠을 청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