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졸한 옹이
락운강촌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이 입원, 투병중인 강원대학병원에 다녀왔다.
병명도 생소한 ‘신우요관암’
이미 콩팥에 전이되어서 두 개의 콩팥 중 하나를 제거하기까지 했다면서
선생님은 앞으로 콩팥 한 개로 살아야 한다고 억지웃음을 보이셨다.
병문안을 다녀와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비뇨기과 암에서 드문 암이지만
발병은 늘고 있는 추세이며,
전이가 일어난 침윤성인 경우, 5년 생존율은 5% 이하라 한다.
지병이던 당뇨 합병증도 이겨 내고
금년엔 그렇게도 좋아하던 담배도 끊은 채
매일 걷기 운동에 열중하시어서 주변으로부터 “이젠 많이 좋아지셨다.”는
평을 받고 있었는데 왠 암이란 병까지....
선생님(허우봉)은 수업 시간에 재미있는 삼국지 이야기를 자주 해 주셔서
나의 다른 급우들에겐 인기가 좋았었다.
하지만 나에겐 아픈 추억이 너무나 크기에 수 십 년이 지난 아직도
무서운 분으로만 각인되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사나흘 전 눈이 내린 뒤라서 아주 매섭게 추웠던 6학년 어느 날
종례 후 청소가 거의 끝날 쯤에야 나타난 급우 한 명이 얄미워서
분단장(지금의 줄반장?)이었던 나는 골탕을 먹이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야! 너 담임선생님이 오래.”라고 거짓말을 했다.
선생님의 호출.
“선생님이 네 친구야? 어디다 장난을 쳐!”
지시봉 막대기가 다 부러지도록 손바닥과 엉덩이를 무수히 맞고
무릎 꿇고 팔 올려 벌을 서다보니 급우들은 모두 다 귀가하고
저녁 식사시간이라 뱃속에서의 꼬르륵 소리가 어찌나 서글펐던지...
‘앞으로 조심해!’라는 마지막 호통에 찔끔대면서 교실문을 나서
신발장에서 신발을 찾았으나 내 신발은 물론 아무 신발도
남아있지 않았다.
선생님이 주신 선생님의 슬피퍼는 내 작은 발에 오히려 걸리적거리기만
할 뿐 차라리 내팽개치고 맨발로 오르막 십리 길을 걸어갔다.
눈 녹아 살얼음이 조각조각 얼어붙은 돌박힌 오솔길을 걸으며
이렇게 혹독한 매와 벌을 받을 정도로 내가 잘못했는지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봐도 수긍하기 힘들어 선생님에 대한 원망만 깊어졌다.
지금처럼 차량도 없고 휴대폰은커녕 일반전화도 없던 시절
더구나 돈 한 푼 없었던 60년대 산골 가난한 국민학생으로서
무조건 반성할 것이지 감히 선생님에 대한 원망이라니...?
그저 가슴에 새긴 채 나이 환갑을 앞두고 나니 하나의 ‘옹이’가
되었을 뿐이지만....
그렇게 서슬이 시퍼렇던 선생님의 75세 늙은 쭈그렁 뱃살의 수술자국을
바라보면서 내 가슴의 옹이가 선생님의 뱃살로 옮겨간 듯하여
괜스레 죄송스럽기만 했다.
나름대로 온갖 풍상을 겪고서도 왜 나는 선생님도 그리고 얄미웠던
그 친구도 도저히 그런 일은 기억이 안 난다고 하는데도
그 옛날 그 일을 못 잊어 가슴에 ‘옹이’로 안고 살아오고 있는 걸까?
이 옹졸한 옹이가 선생님의 암수술 앞에서 새삼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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