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초등학생의 가슴앓이
김 영 호
♡ 어린 천사에 대한 그리움
초등학교 입학해서 첫 무용 시간, 남자 여자 짝을 지으라는 여선생님 말씀,
그러나 모두 예쁜 옷 입고 있는 소녀들에게 내 초라한 모습으로
차마 다가갈 수 없어 잔뜩 주눅들은 강원도 산골 촌놈인 나,
그저 그냥 외톨이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구세주로 나타난 ㅇㅇ자!
반짝반짝 빛나는 빠클이 멋있다면서 내게 다가 와 내 손을 잡는데,
사내 자식이 왜 그리 수줍었는지 아니 첫 이성에게 손을 잡히니 얼마나 가슴은
뛰었는지...그녀는 나에게 진정 천사였다.
우리는 무용 시간마다 손에손잡고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서로에게 익숙해졌고,,
지금 꼬마들은 자연스럽게 잘도 어울리는데 그 당시에는 왜 그리 알라리 꼴라리
놀려댔는지 차마 무용시간 외에는 손도 못 잡고 접근도 못한 채
그저 안타깝게 자꾸자꾸 바라보기만 했고
집에 올 때도 뒤 따라 가면서 뒷모습만 바라보다 그 얘가 줄밤나무 집으로
쏙 들어가면 아쉬운 채 한두 번 뒤돌아보길 반복하면서
해가 바뀌고 또 바뀌고,
어느 소나기 엄청 퍼붓던 날,
그 얘는 줄밤나무에 매여 있는 소를 들여 매려다 비바람에
넘어지는 밤나무에 치어 어린 나이에 천사인 채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십 리 길을 오가면서 한 동안은 밤나무 그루터기를 지날 때마다 속으로 울었지.
지금은 아스팔트길로 덮여 있어 그냥 차로 휙 지나쳐 추억에 젖을 새가 없지만
차 없을 때 그곳을 지날 때마다 어린 시절 짝사랑이 새록새록 그리웠다.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천사 할머니가 돼 가고 있을 ㅇㅇ여!!
우리 고향 친구들이 이담에 하늘나라로 가게 되면
어릴 때 내 손 잡았듯이 반갑게 손잡고 하늘나라 구석구석 잘 안내 해 주시길.....
♥ 키 크고 가슴 봉긋했던 소녀
나는 초등학교 때 키가 꽤?큰 축에 들었다.(지금은 아지니만)
나만금의 키가 큰 우리반 한 소녀가 내 눈 높이에 있었다.
이름은 ?숙이.
급우들 입에 오르내릴까봐 드러내 놓고 다가 갈 수가
없었지만 눈길은 자꾸만 그 소녀의 가슴에 머물렀다.
울렁거리는 가슴을 졸이면서도 자꾸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봉긋한 거기가 그 어느 소녀보다 그리고 너무도 예뻤기
때문에 나도 내눈길을 내맘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는데.....
어릴 적 짝사랑?
분명 그렇다. 꿈에도 보였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그 가슴이 예쁜 소녀는 나를 아예 무시했다.
나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말없는 하찮은 산골짝 촌놈 주제였으니..까.
나와 숙이가 분단장(지금의 줄반장) 역할을 하게 되었을 때인 어느 날
오후에 청소를 하다가 우리 분단이 먼저 끝냈는데 숙이 분단은 아직도 멀었다.
나는 우리 분단을 인솔하여 감히 놀림을 받든말든 겁도없이
숙이네 분단 청소를 도와 주셨다.
우리는 이를 계기로 다음 날에는 숙이가 나에게 크레온파스 빨간색을
빌려 주기도 하고 나는 그렇게나 아끼던 잘 지워지는 커다랗고
(연필 끝에 붙여진 지우개 보다) 비싼 지우개를 흔쾌히 그냥 주기도 했다.
난 집에 또 있다면서...(있긴 뭐가 있어. 형이 읍내에서 사왔다면서 딱 하나만 준 건데)
그래도 숙이가 좋아 하니까 나는 다른 더 좋은 뭐 좋은 걸 줄 것이 없나를
고민만 하고 있었을? 뿐,
그리고 또 어느 날,
서로가 만화책을 바꾸어 보았고 숙이는 나에게 내
만화책을 다 보았다면서 돌려 주었지만 나는 돌려 줄 수가 없었다.
안타깝지만 돌려 줄 수가 없었다.
누군가 훔쳐 갔다. 나쁜 어떤 놈이..........
아무리 숙이 만화책을 가져간 놈을 찾아봐도 ...
공개적으로 수소문해 봐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숙이가 나에게 빨리 되돌려 달라고, 그래야 0환이, 0화 등
친구들과 바꿔 볼 수가 있다면서 되돌려 달라고 보챘다.
찾을 수가 없기에 다른 만화책을 사 주고 싶어도 내게는
용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도화지 안 장 사도 거스름돈 내 놓으라는 알뜰한
부모님이셨으니 만화책 산다고 돈 달라고 하다가는
회초리만 자진해서 맞게 될 게 뻔한 처지였다.
아! 왜 그리도 가난했는지...(지금도 가난하지만)
그걸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봉긋한 가슴으로부터 멀어질 수는 없지 않은가, 너무도 절박했다.
하지만 돈 마련하기가 어디 쉬운가?
남들처럼 거짓말로 용돈 타낼 배짱도 없고,
누구처럼 달걀 훔쳐 팔 용기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속만 태우고 있던 어느 날
읍내서 약방을 경영하시는 아저씨가 우리 집에
오셨기에 큰 절을 올렸더니 학용품 사라면서 용돈을 주셨다.
세배돈 등 평소엔 손님 가신 후 얼른 부모님께
반납했겠지만 그날은 그렇 수가 없었다.
사후에 혼이 나든 말든 모처럼 기적이 찾아온 기회기에..
손님이 가시기도 전 어둑해 지는 십리 길을 달려가
학교앞 가게에서 그 만화책을 샀다.
아버지에게 들키면 큰 일 나기에 나는 뒷산 소나무
꼭대기에 잘 감추어 두고 다음 날 숙이에게 반납하기로 했다.
다음 날 ,
숙이에게 만화책을 되돌려 주게 되었다는 기쁨에
소나무에 급히 오르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나무에서 떨어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학교는 지각해 있었고
충격받은 다리를 내 딛기가 너무도 힘들어
아예 하후 조일 산에서 숨어 보냈다.
(아니 도중에 이미 학교가기 싫어 땡땡이 치던 형식이와 만나 같이 지냈다.)
그리고 다음 다음 다음 날,
어느 정도 회복된 몸을 이끌고 학교에 갔는데
4학년이 되면서 어제부터 남녀가 반이 갈라졌단다.
여학생 반에 감히 찾아갈 용기가 나질 않아 그저 마주칠
기회만 기다리고 있었지만
좀처럼 며칠이 가도록 마주쳐 지질 않다가 어느 날
앞서가는 서너 명의 소녀들 중
키 큰 소녀가 하나 있기에 '?숙아!'하고 불렀으나
뒷모습이 비슷한 5학년 여학생이었다.
이상했다.
아무리 반이 갈렸어도 어쩌다 한번은 보여야 할텐데
도무지 눈에 띄지 않았다.
숙이게게 줄 책 첫머리에 '미안하다. 그러나 여전히 보고싶다.'는 메모는
점점더 자꾸만 흐릿해져 가고 있느데 도대체 숙이는 어딜 갔단 말인가?
어디 아픈가?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느냐???
그럴 수밖에... 그 한참 뒤로 들려온 소식은 도회지 어리로인가로
전학 갔단다.
돌려 줄 만화책은 몇 년 전까지도 우리 집 다락방 별도 상자에 다른 책들과 함께
곱게 보관되어 있었는데
이사를 자주 했어서일까 아니면 내 사랑녀들 편지와 함께 사라진
(마누라짓이 분명) 추억들에 포함되었는지
지금은 그나마 찾을 수가 없다.
초등학교 수준에 왠 첫사랑이었냐고?
그럼 나만 조숙했었나????
-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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