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과 더불어 사는 동네
여느 시골 동네처럼 내고향 구천동네에도
두부류의 주민들이 살고있다
주민증을 확실하게 지니고있는 형체가 보이는 주민들과
이미 사망신고가 되어 주민증이 말소된 형체없는 주민들,
그외에도 정체불명의 물체들이 많이 살고 있다
밤길을 걸어가는 행인들에게 흙을 퍼붓는 가글강아지,
뭔지는 모르지만 야밤에 나무그늘밑에서
인간을 기다리는 납닥발,
그리고 겁쟁이들의 정신을 혼란케하는 헛깨비 ,
그들은 조직을 이루어 마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부엉이는 그들의 연락병인가
서녁에 해지고 어둠이 깔리면 가장 먼저 소리를 내어
공포감을 조성한다
부엉이는 밤길을 다니는 인간의 눈을 노린다 하여
언니는 마실갈때 송진이 붙은 소나무에 불을 붙혀 들고 다니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날 밤, 마실다녀 오던 초등학생 언니는
헛깨비에 홀려 밭둑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는 것을
외할아버지가 구해 온적도 있었다
그날 언니는 앞이 흐려지면서 높이가 일미터도 안되는
언덕받이가 산처럼 높아 보였다고 했다
"옥아 !
니 거서 뭐하노 "
외할배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때서야 정신이 돌아 왔다고 했다
옛날로 옛날로 거슬러 가다가 우리어머니 새댁시절에 살짝 머물러보면
참으로 으시시하고도 소름끼치는
귀신도 곡할 귀신이야기가 있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어느날
갓 시집온 새댁인 어머니는 행여 늦잠을 자게 될까
잠을 자는 동안에도 긴장한 상태였다
중천에 뜬 보름달이 봉창에 비치자 선잠을 자던 어머니는
날이 샌줄로 착각하시고 기겁을하며 일어나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우물가로 나선다.
우물은 밭 한떼기 정도는 지나야 하고
바로 산밑이라 인간의 냄새를 맡은 짐승이
오솔길을 타고 내려 올 것만 같은 한적하고 외진곳이라
대낮에도 으시시한 곳이다
그 외진곳에는 달랑 세가구만 있는데
그중 가장 작은 오두막집이 우리집이다
아참 한가구가 더있다
바로 근처에 형체가 없는 인간들,즉 유령들이 사는 집도 있다
곳집이라고.
*(곳집=상여집 )
고된 시집살이에 선잠자다 날이 샌줄로 착각 하신 어머니는
오밤중에 우물가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푸기 시작했고
서둘러 산나물과 보리쌀을 씻기 시작하셨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에선가 꽹가리 소리가 들려온다
잘못 들었나 해서 다시 귀를 의심해 보지만
이번에는 징소리도 들리고 나팔소리도 들린다.
재너머 하속동네에서 놀이패가 밤새껏 놀다가
이제사 돌아오나보다 하고
쉽게 단정을 짓고는 하던일은 열심히 하시면서
연신 장두들 언덕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런데 곧 나타날것만 같은 사물패들은
보이지 않고 소리만 점점 커져간다
좀전에 들릴듯 말듯하던 징소리가 이제는 바로 귓전에서
들리기 시작하더니
앞니 빠진 노친네의 흥얼거리는 소리도 들리는 것이 아닌가!
그순간 어머니의 뇌리에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고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헉 !
그러고 보니 보름달이 중천에 떠있다
비로서 알아채리신 어머니,
이시간은 귀신들이 들끓는 오밤중이 아닌가
그제사 어머니는 하던일을 내팽게치고
혼비백산 집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그때 이빠진 노인의 쉰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기 시작하고
뒤도 안돌아보고 손쌀같이 달려가 방문을 열어제치고
이불위에 쓰러진 어머니
어머니 뿐만 아니라 큰이모도
이른 새벽에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했다
쉰목소리의 영감소리가 바로 귓전에 들렸지만
형체는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이모는 물푸던 두레박을 던지고
혼비백산 달려가 큰외삼촌을 불러왔고
그러자 그 소리는 사라졌다고 했다
어린시절 어머니를 졸라 그 으시시한 예기를 들은후
용감한척 했지만
그날밤 세상에서 최고 무서운 꿈을 꿨다
어찌된 영문인지 내가 그 상여집에서 기거하고 있었다.
아무리 꿈이지만 살아 있는 인간이
귀신이 되어 있다니 ㅋ
곳집에는 여러 종류의 귀신들이 있었다
아이를 업고 있는 아지매
지게를 진 아제
앞니빠진 할배
꼬부랑 할머니
처녀 총각
그중의 한명인 나는 그들과 무척 친하게 지내는것 같았고
내 옆에는 늘 작은 아이하나가 가 붙어 다녔다
형체없는 주민들이 좁은 공간에 쭈구리고 앉아서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한다
"인간이 온다
인간이 오고있다"
그 소리가 들리자 이들은 손살같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나역시 아이의 손을 잡고 상여집 뒤쪽으로 피한다음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곳집에서 상여를 꺼내간다
마을에 초상이 난 모양이다
죽은자들은 낮에는 그렇게 숨어 있다가
밤이 되자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아이의 손을 잡고 동네로 나섰다
그들은 각자의 살던 집으로 돌아가 생전에 하던일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처녀귀신은 물을 길러 나르고
총각귀신은 나무지게를 지고 할배는 곰방대를 물고 담배를 피운다
별희한한 꿈속 여정을 마치고 잠에서 깨 났다.
살아오는 동안 여러가지의 다양한 꿈을 꿔보았지만
이번만큼 괴상한 꿈은 첨이었다
아무튼 그 꿈을 꾼 이후에 알게된 일이 하나 있다
인간들만 귀신을 무서워 하는것이 아니라
귀신도 사람을 무서워 한다는것이다ㅎㅎ
어린시절 어머니의 이야기는 실제 상황이었고
그래서 더 스릴있고 재미가 있었다
귀신과 함께 더불어 살면서도 더없이 아늑하고 평화로운
내고향 구천동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곳없고,
4차원의 공간에서 시간의 구애를 받지않는
형체없는 주민들은 여전히 잘있으리라
꿈속에서 잠시 내가 기거했던 곳집은 허물어지고 없지만
상여집 조차도 그리운 내고향 구천동네!
어머니의 이야기 보따리는
치매가 시작되자 다시는 들을 수 없었고
그렇게 예기를 할 수 있었던
지난날의 어머니가 그립기만하다
'퍼온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9일간 천국 만들기 (0) | 2009.01.08 |
---|---|
근하신년 (0) | 2008.12.29 |
나흘간의 사랑 - 새벽- (0) | 2008.12.25 |
매리크리스마스 (0) | 2008.12.23 |
건배 (0) | 2008.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