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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 / 이경

락운강촌 2008. 11. 22. 16:58

정사 /이경



암사마귀는 강하다 교미하는 순간
제 사랑을 먹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움의 잔해를 남기지 않으려고
집착의 대상을 살려두지 않으려고
무엇보다
사랑이 빠져나간 그의 등을 용납할 수 없어

절정의 수컷을 정수리부터 먹어치운다
풀숲의 역사만큼이나 질기고 능숙한 혀 속으로
이 목 구 비가 녹아들어
황홀하게 심장을 뜯어먹히는 수사마귀

오, 저처럼 싱싱한 사랑을 생식하는 암컷의 식욕과
심장보다 더 늦게까지 살아남아 생을 무두질하는
수사마귀의 저것!
을 보라

독이 익어가는 가을 꽃밭이다
탄피처럼 몸이 부푼 암사마귀 한 마리
마른 꽃대궁에
청산가리 같은 목숨을 하얗게 쏟아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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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 / 1954년 경남 산청 출생. 1993년 《시와시학》신인상으로 등단. 2000년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시집 『흰소, 고삐를 놓아라』『푸른 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