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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방북의혹 대해부(새벽달 글)

락운강촌 2011. 1. 16. 17:58

 

 

박근혜 방북의혹 대해부

('새벽달' 씨의 글)

 

사람들은 자신의 그릇 안에서 자신의 기준으로만 생각하고 판단 하는듯 하다.

상대가 처한 상황, 처지등은 깡그리 무시하고 자신이 느끼고 싶은 대로 상대를 느끼고

생각하고 싶은대로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한계인듯하다.


근래 차기 대권후보로 다른 사람에 비해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지지를 받고있는

박근혜에 대해 상당한 논란이 되고 있다.

 

논란의 골자는

 

1) 2002년 5월 3박4일의 일정으로 김정일이 전용기까지 보내서 북한을 다녀왔다.


2) 북한에서 국빈급 숙소인 백화원초대소에서 공적으로 간 사람들이 1박2일 머문데 비해

    3박4일이나 머물면서 김정일과 상당히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3) 그 자리에서 김정일이 6.15공동선언을 실천할 것을 요구하자 “6.15선언은 각자의 부친이었던

    박대통령과 김일성간의 합의였던 7.4공동성명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부친들이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자”고 약속했다.


4) 귀국후 김정일에 대한 평가에서 “대화하기가 편한 사람으로 느꼈다. 시원시원하게 대답을 해 주었다."

    “김 위원장과 말이 잘 통했다.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인 것 같다” 라고 말했다.


5) 김정일의 서울답방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대답을 들었다


6) 2004년 8월 12일, 박근혜가 김대중을 찾아가 “아버지 시절에 많은 피해 입고 고생한 것을

   딸로서 사과말씀을 드립니다.”라고 사과했다.




여기에 대해서 김대중과 김정일의 술수에 휘말려 발목이 잡힌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혹시 우리나라에 치명적인 6.15공동선언 약속을 지키겠다고 하는것 아닌가 하는 것이 우려의 골자이다.

그러면서 국민들이 모두가 납득을 할 수 있도록 해명을 하여 불안감을 씻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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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서정주님의 [국화옆에서]의 한구절이다.

국화꽃 한송이의 내면에도 봄부터 울어대는 소쩍새의 울음의 사연과

먹구름 속에서 울어대던 천둥의 시련이 있었다.

하물며 한 인간이 살아오면서 쌓인 연륜속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과 시련이 숨어 있겠는가?


늦가을 찬서리속에 피어있는 국화꽃을 바라보면서 봄부터 피를 토하듯이 처절하게 울던 소쩍새의 사연과

먹구름속에서 울어대던 천둥번개의 시련을 짐작도 못하고 단지 눈에 보이는 겉모습만 느끼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예쁘게 꾸며진 조화를 감상하는 것이 좋으리라.


한 인간을 판단할 때 자라온 배경과 환경을 무시하고 일시적인 말한마디와 행동하나를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한다면 그것보다 더 큰 오류가 없을 것이다.



1. 박근혜의 방북동기는 어떻게 볼 것인가?

 

사람들이 의심하는 가장 큰 이유의 하나가 왜 김정일이 박정희의 딸이고 정치초년생이었던 박근혜에게

전용기까지 보내고 백화원초대소에서 3박4일간 도에 지나친 대우를 했느냐 하는 것이다.


박근혜는 1998년도에 달성지구 보궐선거에서 김대중 정권의 핵심세력이었던 엄삼탁을 누르고

한나라당 후보로 당선되었다.

당시 조직도, 자금도, 인맥도 절대 열세였던 박근혜는 특유의 뚝심으로 유권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신뢰를 쌓는 방법으로 발로 뛰는 선거로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였다.

김대중으로서는 자신의 실세인 엄삼탁을 물리치고 당선된 박근혜에 대해

절대로 호감을 가질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초선의원 박근혜가 2002년 [개인자격]으로 북한을 다녀왔다.

박근혜의 방북시 김대중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설도 있으나 확인할 수 없고

방북 허가 과정에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김대중으로부터 모종의 부탁,

혹은 지침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수 있다. 

 

방북시 김정일과의 대화내용을 보면 순전히 개인적인 자격만의 대화내용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당시 김정일과 김대중은 2000년 6월, 김대중의 방북과 햇볓정책으로 완전히 한통속이 되어 있던 시기였고

야당의원이었던 박근혜는 김대중과 그렇게 좋은 관계는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박근혜의 방북전 행보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1년까지 박근혜는 김대중과 김정일에 준엄했다는 평가이다.

2001.8.23. 김대중은 방한 중인 베트남 국가주석에게 한국이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인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이에 대해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부총재는 이렇게 비판했다.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으며 참전용사들의 명예를 이렇게 손상시켜도 되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6 25참전 16개국 정상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북한 국민에 고통을 준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한 것과 같은 엄청난 일로 참전용사들의 가슴과 대한민국의 명예에 못을 박는 것과 같다”

 

박근혜는 당시 한나라당 부총재로서 김대중과 김정일에 대해 사상적 적대감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초선의원이지만 여당의 실세를 물리치고 당선이 되고, 박정희의 딸이고,

야당의 부총재이면서 자신의 노선에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박근혜는 김정일과 만나

햇볓정책이란 이름으로 모종의 음모를 진행하던 김대중에게는 상당한 걸림돌이었을 것이다.

박근혜의 방북은 김대중으로부터 모종의 부탁을 수행하는 임무를 받았든 그렇지 않든

김대중이 박근혜를 시험하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혹자는 노회한 김대중과 김정일의 농간에 초선의원인 박근혜가 놀아났다고 비난하고 있으나

        만약 박근혜가 김대중의 부탁으로 북한을 방문했다면

        당시의 상황에서  대통령 김대중의 요청에 대해 어떻게 행동 하여야 했을까?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이회창도 극구 만류할 정도였으니 김대중의 의도야 뻔한것이 아닌가?

 

① 방북을 거절한다면 박정희의 딸답지 않은 겁쟁이 비겁자가 되는 것이고,

② 방북을 해도 김정일한테 잔뜩 주눅들게 만들어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거나,

③ 최악의 경우 사고를 가장한 합법적 제거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가정이 아닐까? 


③의 경우 김정일의 전용기는 참으로 편리한 수단이 될 수 있다면 지나친 오버일까?

북한의 김정일이 지금까지 자신의 전용기를 이용했다는 얘기는 한번도 듣지 못한것을 보면

그 전용기라는 게 김정일도 믿지 못할 정도로 위험하고 언제 어디서 고장나서 추락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험한 물건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2. 박근혜의 방북길은 호화 여행이었나?

 

별주부전에 나오는 얘기를 조금 바꾸어 산중대왕인 호랑이가 용왕의 병문안을 하기 위해

자기를 대신하여 새끼토끼를  보냈다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도 거북이(별주부)의 등에 홀로 태워 보내는 짓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토끼를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교활하고 능수능란한 꾀쟁이 늙은 여우를

보좌관으로 삼아 토끼의 안전을 지켜줄 군사도 딸려서 튼튼한 보트에 태워 보냈을 것이다.


박근혜의 방북길을 보면 두어 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안전한 육로를 두고

북경까지 날라가서 김정일이 보낸 전용기를 타고 위험한 장산곶 바닷길을 지나 평양으로 들어갔다. 

판문점을 지나 육로로 갈 수 있는 길을 두고 중국으로 가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북한으로 들어간 것이다.

 

당시의 상황으로는 충분히 육로로 갈 수 있는 길이었을 것이다.

회담이 끝나고 김정일이 편안한 육로로 가라고 한 것만 봐도 전용기를 북경에 보냈던 것은

어떤 의도가 있었을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순전한 호의에 의한 것이었다면 김정일이 판문점까지 차를 보내어 영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일종의 시험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일까?

이런 여행을 비행기를 못타서 환장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절대로 편안한 여행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별주부의 등에 타고 가는 토끼야 이판사판이면 뛰어 내릴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불가능한 상태에서 전용기에는 특별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환영객도 꽤나 많이 타고 있었을 것이다.

참으로 스릴이 넘치다 못해 소름이 돋을 방북길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뭐하러 비행기를 타고 멀리 돌아가느냐?

안전하게 차로 판문점을 통해서 가라고 배려(?)한 김정일의 행동을 보면

그도 비행기 길이 위험하고 험한 길이란 걸 인정한 것 아닌가?

이런 걸 호화여행이라고 해야 하나? 


백화원 초대소의 일정도 마찬가지다.

국빈의 자격으로 공식적인 방문이었다면 수행원도 많이 있었을 것이고 내외신 기자 및 경호원 등

수많은 인원이 같이 갔을 것이지만 그런 비공식적인 임무를 띄고 방문한 박근혜가

얼마나 많은 수행원과 같이 갔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많은 인원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연금 아닌 연금 상태로 3박4일을 보낸 것은 아닐까?  

이런 샹태로 백화원초대소에서 3박4일 묵었던 게 그리도 문제되었던 일이었을까?



3. 왜 박근혜에게 김정일은 편안한 대화상대였을까?

 

박근혜가 북한에 머무는 동안 김정일과 만나 “아버지 대에서 이룩하지 못한 7.4공동성명의 열매를 맺자”

다짐들이 있었고 김정일에게 서울답방을 요청했고 박근혜는 김정일에게 “분명히 약속했죠?” 라고

거듭 다짐 했단다.

 

순수한 개인의 입장에서였다면 절대로 있을수 없는 대화였고

설사 이런 대화가 오갔다고 해도 이런 개인적인 약속을 대통령이 된 후

반드시 지켜야 할 이유도 없기 때문에 문제삼을 일은 아닐 것이다.


귀국후 김정일에 대한 평가에서 “대화하기가 편한 사람으로 느꼈다.

시원시원하게 대답을 해 주었다." “김 위원장과 말이 잘 통했다.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인 것 같다” 라고 말했다.


박근혜와 김정일의 관계에 대해서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런 관계에서 적지에 들어가 적장과의 단독대화에서 “대화하기 편한 사람으로 느꼈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이것은 두 가지의 경우밖에 상상할 수 없다.

첫째는 적장의 인품에 반해 완전히 거기에 빠져드는 경우이고,

두 번째는 적장을 완전히 자신의 페이스대로 이끌어 자신만만하게 대화를 주도한 경우이다.

첫째의 경우야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고

박근혜는 적지에 들어가 두 번째 경우의 대화를 이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자신만만하게 하였을까?



4. 박근혜는 말 한마디로 7.4의 약속도, 6.15의 공약도 무산시켰다.

박 대통령이 경제개발과 군사력 증강을 목적으로 북한과 맺은 7.4공동성명은

그녀에게 확실한 족쇄이고 부담이다.

방북하여 김정일과 대화하는 도중에 6.15 공동성명을 이행하라는 김정일의 요청에 대해

6.15는 아버지 대에서 약속한 7.4공동성명의 연장임을 강조하며

자식세대인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약속임을 강조하고 서울 답방을 요청하였다.

그 와중에 “분명히 약속했죠?”하며 다짐까지 받았다.

이 한 마디로 박근혜는 6.15도 7.4공동성명과 한 묶음으로 묶어서 무산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녀가 한 말의 깊은 뜻은(공적인 입장이라면) “아버지가 약속한 7.4공동성명을 지키기 위해서

여자인 내가 여기까지 직접 왔다. 우리가(남한이) 7.4와 6.15의 약속을 지키기를 원하면

당신도 서울에 직접 와라.” 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왜 그녀가 “분명히 약속했죠?”라고 강조까지 했을까?


그리고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인 것 같다”고 한 말도 김정일에 대해 (서울답방에 대한)약속을 이행하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봐야 할것이다. 

완전히 개인자격이었다면 북한의 통치권자인 김정일의 답방을 요청할 수 있었을까?



바둑이나 장기의 고수들은 상대편의 한수를 보고 몇 수 앞까지 내다본다.

사람들의 대화도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판은 김대중과 김정일이 벌려놓고 박근혜가 싹쓸이 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박근혜의 방북으로 인해 김정일은 완전히 그녀에게 발목이 잡힌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박근혜가 의도적으로 한 일이라면 참으로 빈틈없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그 흉내낼 수 없는 배포와 주도면밀한 술수에 혀가 내들러질 일이다.


6.15 약속 이행을 강요하기 위해서는 김정일이 서울을 답방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에게 “분명히 약속”한 일이다.

하지만 김정일은 절대로 서울을 방문하지 못한다.

후계자인 김정은도 마찬가지다.

만일 이들이 답방을 하게 된다면 핵무기도 포기하고 무력통일의 의지도 포기하고

완전히 백기를 들고 항장(降將)의 입장으로 오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도 모르고 6.15에 겁먹고 국민들에게 진실을 해명하라고 강요한다.

하지만 과연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국민의 이름으로 해명하라고 할 수 있는가?

아무리 여론을 이끌어 나가는 언론인이고 지역구 주민의 선출에 의해

여의도 한쪽 구석이 온세상인 양 착각하는 사람들이라 해도 전체 국민을 대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궁금하면 개인적으로 질문하면 그만이다.

만약 완전히 개인자격으로 방북을 한 것이라면 문제삼을 이유가 있겠는가?

혹시나 박근혜의 사상이나 정체성이 의심스러우면 

그녀의 배경과 과거의 행적, 그리고 현재의 성향을 나름대로 알아보고 판단하면 될 것이다.


어쩌면 이런 사실은 그녀만이 가슴 깊이 간직해야 할 天氣인지도 모른다.

이게 밝혀짐으로써 어쩌면 차후 그녀의 대북정책에 지장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박근혜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향해

“부친인 박 대통령의 후광만 생각하는 무슨무슨 빠”라고 말하는 것도 상당히 결례가 되는 말이다. 

박 대통령의 후광을 생각할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50대 이상은 된 사람들이다.

 

아이돌에 환호하는 10대 애들도 아니고 적어도 긴긴 봄날 울어대는 소쩍새의 사연도 간직하고,

먹구름 속에서 울어대던 천둥의 시련도 이기고 찬서리에 꽃망울을 터뜨리는 정도는 된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무슨 빠라고 비난하는 것은 좀 지나친 것 아닌가?


김영삼 이후 이명박 정권까지 국민들은 이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왔다.

모두가 [민주화 운동]이란 허울좋은 이름으로 김일성 주체사상을 이용한 사람들이거나

종북의 경력이 있던 사람들이었다.

 

박근혜를 제외하고 현재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김문수, 오세훈, 이재오, 유시민, 손학규 등

모두가 민주화운동 경력자이거나 민중당에 적을 두고 있던 사람들이다.

 

이런 상황하에서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믿지 못하고 분열이 된다면 어쩌려는가?

과거 대부분의 우익이란 사람들이 이명박을 지지했던 것은

그가 좌파정권을 종식시킬 인물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명박의 행동을 보면 과거 좌파정권보다 달라진게 거의 없다.

         그런데도 박근혜의 정체를 의심하며 국민 앞에 해명하라고 하는 사람들은 지나친 과욕이 아닐까?




* 추가

 

2004년 8월 12일, 박근혜가 김대중을 찾아가 “아버지 시절에 많은 피해 입고 고생한 것을

딸로서 사과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사과했다. 는 사실에 대해....


김대중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2003년과 2004년에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1. 대북송금과 비자금 150억원 조성 의혹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아오던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2003년 8월 4일 의문의 자살을 하였다.


2. 2004년 2월 운수업체로부터 1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안상영 전 부산시장이

   구치소에서 목을 매 숨졌다. 안 전 시장이 숨을 거두기 전 날엔

   같은 혐의로 부산국세청 공무원 전모 씨가 승용차에서 분신해 자살했다.


3. 2004년 3월 11일에는 남상국 전대우건설 사장이 의문의 자살을 하였다.


4. 4월에는 건강보험공단 재직 시절 납품비리에 연루돼 조사를 받던 박태영 전 전남지사가,

    6월에는 전문대 설립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의 내사를 받던 이준원 전 파주시장이

   마찬가지로 한강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사람들은 이들의 죽음이 의문사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2004년 8월 12일, 뜬금없이 박근혜가 김대중을 찾아가

“아버지 시절에 많은 피해 입고 고생한 것을 딸로서 사과말씀을 드립니다.”라고 사과했다.

 

왜 그랬을까?

 

그녀의 갑작스런 사과에 대해 김대중은 자서전에서까지 그녀에 대한 앙금을 말끔히 씻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모친을 죽게한 김대중에게 머리를 숙이고 사과했냐고 이유를 밝히라고 아우성이다.

수많은 의문사 명단에 박근혜란 이름이 더 오르지 말란 법이 있었을까?

“치욕스런 의문의 자살을 당하기 싫어 그랬소."라는 말이 정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