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 한 쌍의 지저귐
락운강촌
고향으로 돌아와서 토착 주민들에게 옛날 그 많던 제비들이 왜 안 오느냐고 물으니
농약을 많이 뿌려 제비 먹이 감이 없어졌고 이젠 시골도 공기가 오염되어
잘 오지 않는다는 답변이었다.
서너 바퀴 둘러보더니 전선줄에 나란히 앉아
한참이나 지저귄다.
“ 오랜만에 보는 진흙집이네요.”
“ 요즘 웰빙-붐이 일어 흙집들을 많이 짓고 있고
대부분 흙벽돌인데 이 집은 드물게 순수한
진흙과 나무토막을 이용한 귀틀집이구먼.”
“ 귀틀집이 뭐예요?”
“ 나도 조상들로부터 전해들은 얘기인데
옛날 시골 사람들은 큰 통나무를 ‘井’ 자 모양으로 귀를 맞추어 층층이 얹고 그 틈을 흙으로 메워 짓고 살았었고,
그래서 우리 조상들도 덩달아 그런 집에서 살았었대.”
“ 그럼 우리도 웰빙으로 이 집에서 살까요?”
“ 그래야 하겠는데 이미 딱새 부부가 먼저 와서 차지하고 있네.”
“ 딱새쯤이야 우리가 내 쫓으면 되지 뭘 걱정이에요.”
제비 부부와 딱새 부부는 그날 반나절이나 싸웠다.
승부가 나지 않았다.
딱새들이 고집스럽게 텃세를 부렸지만,
제비들은 연 이틀에 걸쳐 처마 밑을 돌면서 집터를 물색했다.
사흘째 되던 날
그들은 다시 전선줄에 앉아 부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 딱새네 집 입구 처마 밑이 가장 맘에 드는데 딱새네가 끝내 버티려 하네.”
“ 딱새네는 차츰 내몰기로 하고 우선 집부터 지읍시다.”
“ 문제는 집 주인 아줌마가 딱새 수놈 똥도 지겨운데 제비까지 오면
더 지저분하다면서 반기지 않는 눈치인데 어떡하지?”
“ 아마 다 해결될 거야. 주인아저씨가 몇 년 전에 경남에서 제비가 금반지를 물어다
줬다는 뉴스가 나왔었다면서 제비는 행운을 상징하고,
특히 이런 흙집에는 제비집이 있어야 어울린다고 집 짓게 하자고 설득하고 있거든.
아마 그 아저씨가 우리네 배설물 받침을 만들어 주실 것 같아.”
“ 주인아저씨에게 힘을 보태 주려면 우리도 호박씨라도 물어다 줘야 되는 거 아녜요.”
“ 호박씨가 어디 흔한 줄 알아? 차라리 금반지가 더 구하기 쉬운 걸.”
제비 부부는 그날부터 처마 밑 여기저기에 진흙을 물어다 집터를 마련하려 했다.
하지만 유약이 발라진 진흙과 통나무에 제비 발톱이 들어가지 않아
제비가 처마 밑 절벽에서 계속 미끄러져 우선 집터 마련조차 불능했다.
제비들은 이를 알아차리고 다른 곳을 물색했지만,
매일 한 번씩은 찾아와 혹 주인아저씨가 제비가 벽에 붙을 수 있도록
널빤지라도 붙여 주었는지를 확인하고는 아쉬운 채 되돌아가고 있다.
제비가 집을 못 짓자 아내는 내심 잘 됐다면서 내게 제비집 밑받침을 마련해 줄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라면서 일침을 놓는다.
나도 아내와 싸우면서까지 제비를 맞을 생각은 없다.
혹, 금반지라도 한 개 물어다 준다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그들은 오늘도 빈손으로 와서 돌아만 볼 뿐,
전혀 눈치를 못 채고 있다.
언제쯤이나 알아차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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