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교생 실습 오셨던 여선생님

락운강촌 2018. 8. 26. 16:29


교생 실습 오셨던 여선생님

                                                                             

                                                                                  김영호


 중학교 1학년 때였던가,

아담하면서도 그 당시 시골에서는 볼 수 없었던 대담한 미니스커트 차림의

앳된 여선생님이 음악과 미술 과목을 지도하러 오셨다.


당시 우리 시골 중학교에는 미술과 음악 담당 선생님이 없었는데

그 여 선생님이 오시면서 1년간 배울 음악과 미술을 약 두 달 만에

속성으로 다 배웠다.


나는 음악과 미술에 소질이 없었지만 그 여선생님 과목이기에 정말 열심히

따라가려 애썼다.

일기도 그림으로 그리려 하다가 잘 안 되어  며칠 만에 포기했지만

더 힘든 건 변성기에 접어든 사춘기 나로서는 노래 부르기가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도 종아리가 예쁜 그 여선생님이 좋아서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여 선생님은 수업 대신 자습하라고 하고선 선생님 책상에 엎드려

훌쩍 훌쩍 ∼  울고 계셨다.

왜 우실까?  무슨 슬픈 일이 생긴 걸까?


아까 책상 위에 벗어 놓았던 손목시계를 누가 가져갔단다.

그 당시 손목시계가 그리 흔치 않았다. 결혼 예물로나 주고받던 1960년대였으니까.

그러니 꽤 비쌌을 것이다.

아마 대학 입학 선물로 받은 귀중품이었을 지도..

그걸 잃어버렸으니.. 이제 대학을 갓 졸업한 여린 교사 초년생으로서

눈물이 날 수밖에..


그런데 이 사건이 나에게로 불똥이 튈 줄이야.


다음 시간에 교무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전부 눈감으라고 하고는

“순간적 견물생심으로 선생님 책상위에 있던 손목시계를 가져간 학생만

조용히 눈을 떠라.”


눈을 감고 있으니 그 여선생님이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던 모습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괜스레 나도 슬퍼져 내 눈에 눈물이 고여 왔다.


잠시 후 교무선생님이 이제 눈을 뜨라고 하고선

"모든 걸 모른 척 해 줄 테니 방과 후에 내 책상 위에 조용히 가져다 놓거라."

하면서 조용히 나가셨다.


다음 날 그 교무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오란다.

학급 임원도 아닌 나를 부를 리가 없는데 왜 나를 부를까?

마치 죄인인양 가슴이 덜컹했지만 억지로 억지로 진정하면서 교무실로 갔는데

나는 교무선생님 말씀에 어이없고 창피하고 억울해서 말문이 콱 막히고 말았다.


"네가 양심의 가책을 느껴 눈물을 흘리는 걸 봤다.

그래서 조용히 가져다 놓으라고 했는데 왜 안 가져 왔는가?"


이미 이 모습을 교무실에 있던 전 선생님들이 다 보고 들었으니 모두 나를 범인으로

여길 것이 아닌가? 

아찔한 순간순간이 아주 더디게 흐르고 있었다.

너무 억울해서 다리마저 떨려 왔다.


대답도 못하고 떨고 있는 이런 모습에 교무선생님은 여유롭게 훈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긴 말씀이 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 초겨울 어느 날.

부엌에서 소여물을 끓이는데 행상 아줌마가 와서 양말을 사 달라고 조르다 간 후

막고개(여창동과 안실 사이 고개) 방향으로 가다가 되돌아 와서는

나더러 무조건 양말 세 켤레를 빨리 내 놓으라고 닥달하여 이에

아버지로부터 도둑질 했으면 맞아야 정신차린다며

내 억울함을 묻지도 않은 채 무조건 엄청나게 두들겨 맞았던 일이 떠올랐다.


그런 일이 내게 또 벌어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너무도 억울한 이 사연을  가족들에게 울면서 얘기하고

학교에서 모두들 나를 시계 훔친 범인으로 여기고 있으니 이젠 학교에

갈 수도 없다고 했다.


형수가 조용히 자신이 결혼 예물로 받아 간직하던 손목시계를 가져다주시면서

" 도련님이 아무리 훔치지 않았다고 우겨도 이제는 믿지 않게 됐으니 이거라도

  가져다 드리고 학교에는 꼭 다녀야 해요."라면서 위로해 주셨다.


다음 날 미술 필기시험을 보면서

나는 이 형수가 준 시계를 어떻게 전달할까만 고민하다가 시험지를 백지로

제출하고 말았다.

- 이 시험 때문에 미술 과목에 '양'을 받아 연말 우등상도 못 받았다.

   수우미양가 점수가 넘치지만 과목 중 한 과목이라도 '양' '가'로 평가받으면 제외된다는 규정 때문에-


수업 끝 종이 울리고 맨 뒤에 자리했던 나는 시험지를 걷어서 선생님에게

제출하면서 형수가 준 시계함을 조용히 놓고 나왔다.

그 시계함에 메모지도 잊지 않았다.

- 선생님, 선생님의 잃어버린 시계보다는 좋지 않겠지만 우리 집에는 이 시계밖에 없어요. -


다음 날이 일요일이었는데 집에서 일을 돕다가  뾰족한 옥수수그루터기에

발목을 찔려 당시 차량도 없는 산골 여건에서 십 리길을 걸어갈 수가 없어

3일간이나 결석을 하고 있는데

그 여 선생님이 우리 집까지  찾아 오셨다.


자신의 잃어버린 시계 때문에 내가 학교를 그만 두는 줄 알고 방문했단다.

그리고는 형수 시계를 내밀면서 나와 형수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어제 학급 총무가 찾아와서 영호가 시계를 훔친 것이 아니고 다른 학생이

그랬는데 제발 밝히지만 말고 선생님께 대신 전해 달라고 했다면서

그 시계를 전달했단다.


그 학급 총무는 그 후 학교 도서실 관리를 하면서 학교 책을 자신의 집으로

빼돌린 사실이 밝혀지고는 학교를 관두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 시계를 총무가 훔쳤다는 확증이 밝혀지지도 않은 채

그 선생님은 교생 실습을 마치고 우리 학교를 떠나셨었다.


한참이 지나고 나에게 작은 소포가 배달되었다.

그 여 선생님이 손목시계를 보내 오셨다.


- 영호야! 내가 슬플 때 함께 울어 주었던 네 순수한 마음이 너무도

  고마웠다. 그리고 누명을 뒤집어쓰고 아파할 때 오히려 너를 오해한 채

  도와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그리고 도련님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그 아끼던 결혼 예물 시계를

  내게 선뜻 내 주셨던 형수님의 거룩함에 경의를 표하고자 한다.

  

  영호야,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 될 것을 믿는다.

  그리고 너의 공부에 이 시계가 좋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사랑한다, 영호야.-


나는 선생님이 주신 그 시계를 손목에 감히 찰 수가 없었다.

-사용하다가 고장이라도 날까봐.-

 몇 십 년이 지난 지금, 초침도 멈추었지만 이 시계를 버릴 수도 없다.

 그 흔한 제자의 선생님에 대한 짝사랑이 아닌

 그 이상의 관계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