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생 실습 오셨던 여선생님
교생 실습 오셨던 여선생님
김영호
중학교 1학년 때였던가,
아담하면서도 그 당시 시골에서는 볼 수 없었던 대담한 미니스커트 차림의
앳된 여선생님이 음악과 미술 과목을 지도하러 오셨다.
당시 우리 시골 중학교에는 미술과 음악 담당 선생님이 없었는데
그 여 선생님이 오시면서 1년간 배울 음악과 미술을 약 두 달 만에
속성으로 다 배웠다.
나는 음악과 미술에 소질이 없었지만 그 여선생님 과목이기에 정말 열심히
따라가려 애썼다.
일기도 그림으로 그리려 하다가 잘 안 되어 며칠 만에 포기했지만
더 힘든 건 변성기에 접어든 사춘기 나로서는 노래 부르기가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도 종아리가 예쁜 그 여선생님이 좋아서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여 선생님은 수업 대신 자습하라고 하고선 선생님 책상에 엎드려
훌쩍 훌쩍 ∼ 울고 계셨다.
왜 우실까? 무슨 슬픈 일이 생긴 걸까?
아까 책상 위에 벗어 놓았던 손목시계를 누가 가져갔단다.
그 당시 손목시계가 그리 흔치 않았다. 결혼 예물로나 주고받던 1960년대였으니까.
그러니 꽤 비쌌을 것이다.
아마 대학 입학 선물로 받은 귀중품이었을 지도..
그걸 잃어버렸으니.. 이제 대학을 갓 졸업한 여린 교사 초년생으로서
눈물이 날 수밖에..
그런데 이 사건이 나에게로 불똥이 튈 줄이야.
다음 시간에 교무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전부 눈감으라고 하고는
“순간적 견물생심으로 선생님 책상위에 있던 손목시계를 가져간 학생만
조용히 눈을 떠라.”
눈을 감고 있으니 그 여선생님이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던 모습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괜스레 나도 슬퍼져 내 눈에 눈물이 고여 왔다.
잠시 후 교무선생님이 이제 눈을 뜨라고 하고선
"모든 걸 모른 척 해 줄 테니 방과 후에 내 책상 위에 조용히 가져다 놓거라."
하면서 조용히 나가셨다.
다음 날 그 교무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오란다.
학급 임원도 아닌 나를 부를 리가 없는데 왜 나를 부를까?
마치 죄인인양 가슴이 덜컹했지만 억지로 억지로 진정하면서 교무실로 갔는데
나는 교무선생님 말씀에 어이없고 창피하고 억울해서 말문이 콱 막히고 말았다.
"네가 양심의 가책을 느껴 눈물을 흘리는 걸 봤다.
그래서 조용히 가져다 놓으라고 했는데 왜 안 가져 왔는가?"
이미 이 모습을 교무실에 있던 전 선생님들이 다 보고 들었으니 모두 나를 범인으로
여길 것이 아닌가?
아찔한 순간순간이 아주 더디게 흐르고 있었다.
너무 억울해서 다리마저 떨려 왔다.
대답도 못하고 떨고 있는 이런 모습에 교무선생님은 여유롭게 훈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긴 말씀이 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 초겨울 어느 날.
부엌에서 소여물을 끓이는데 행상 아줌마가 와서 양말을 사 달라고 조르다 간 후
막고개(여창동과 안실 사이 고개) 방향으로 가다가 되돌아 와서는
나더러 무조건 양말 세 켤레를 빨리 내 놓으라고 닥달하여 이에
아버지로부터 도둑질 했으면 맞아야 정신차린다며
내 억울함을 묻지도 않은 채 무조건 엄청나게 두들겨 맞았던 일이 떠올랐다.
그런 일이 내게 또 벌어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너무도 억울한 이 사연을 가족들에게 울면서 얘기하고
학교에서 모두들 나를 시계 훔친 범인으로 여기고 있으니 이젠 학교에
갈 수도 없다고 했다.
형수가 조용히 자신이 결혼 예물로 받아 간직하던 손목시계를 가져다주시면서
" 도련님이 아무리 훔치지 않았다고 우겨도 이제는 믿지 않게 됐으니 이거라도
가져다 드리고 학교에는 꼭 다녀야 해요."라면서 위로해 주셨다.
다음 날 미술 필기시험을 보면서
나는 이 형수가 준 시계를 어떻게 전달할까만 고민하다가 시험지를 백지로
제출하고 말았다.
- 이 시험 때문에 미술 과목에 '양'을 받아 연말 우등상도 못 받았다.
수우미양가 점수가 넘치지만 과목 중 한 과목이라도 '양' '가'로 평가받으면 제외된다는 규정 때문에-
수업 끝 종이 울리고 맨 뒤에 자리했던 나는 시험지를 걷어서 선생님에게
제출하면서 형수가 준 시계함을 조용히 놓고 나왔다.
그 시계함에 메모지도 잊지 않았다.
- 선생님, 선생님의 잃어버린 시계보다는 좋지 않겠지만 우리 집에는 이 시계밖에 없어요. -
다음 날이 일요일이었는데 집에서 일을 돕다가 뾰족한 옥수수그루터기에
발목을 찔려 당시 차량도 없는 산골 여건에서 십 리길을 걸어갈 수가 없어
3일간이나 결석을 하고 있는데
그 여 선생님이 우리 집까지 찾아 오셨다.
자신의 잃어버린 시계 때문에 내가 학교를 그만 두는 줄 알고 방문했단다.
그리고는 형수 시계를 내밀면서 나와 형수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어제 학급 총무가 찾아와서 영호가 시계를 훔친 것이 아니고 다른 학생이
그랬는데 제발 밝히지만 말고 선생님께 대신 전해 달라고 했다면서
그 시계를 전달했단다.
그 학급 총무는 그 후 학교 도서실 관리를 하면서 학교 책을 자신의 집으로
빼돌린 사실이 밝혀지고는 학교를 관두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 시계를 총무가 훔쳤다는 확증이 밝혀지지도 않은 채
그 선생님은 교생 실습을 마치고 우리 학교를 떠나셨었다.
한참이 지나고 나에게 작은 소포가 배달되었다.
그 여 선생님이 손목시계를 보내 오셨다.
- 영호야! 내가 슬플 때 함께 울어 주었던 네 순수한 마음이 너무도
고마웠다. 그리고 누명을 뒤집어쓰고 아파할 때 오히려 너를 오해한 채
도와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그리고 도련님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그 아끼던 결혼 예물 시계를
내게 선뜻 내 주셨던 형수님의 거룩함에 경의를 표하고자 한다.
영호야,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 될 것을 믿는다.
그리고 너의 공부에 이 시계가 좋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사랑한다, 영호야.-
나는 선생님이 주신 그 시계를 손목에 감히 찰 수가 없었다.
-사용하다가 고장이라도 날까봐.-
몇 십 년이 지난 지금, 초침도 멈추었지만 이 시계를 버릴 수도 없다.
그 흔한 제자의 선생님에 대한 짝사랑이 아닌
그 이상의 관계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