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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학 개론

락운강촌 2017. 3. 20. 17:40


꼰대학 개론

 

네이버 어학사전을 찾아보면 꼰대라는 뜻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습니다. 즉 일반적인 은어로는 늙은이를 이르는 말이며 학생들의 은어로는 선생님을 뜻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늙은이라고 하면 직장을 그만둔 60세 이상의 사람들을 말하며 따라서 우리나라에는 대략 1000만 명 정도의 이른바 꼰대들이 살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학생들이 말하는 꼰대로서의 선생님은 사실 별로 술안주 감이 안 되는 제한적 의미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냥 자유를 구속하는 도덕선생님쯤으로 보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꼰대라고 부르는 것은 학생들의 애교쯤으로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선생님 보고 꼰대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중고등학생들이지 대학생만 해도 교수 보고 꼰대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상사나 간부를 칭하는 꼰대도 불평불만의 배출구쯤으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문제는 늙은이로 부르는 60세 이상의 꼰대에 있습니다. 옛날에도 꼰대라는 말이 있었다면 지금의 60세 이상은 모두 꼰대로서 고려장을 당했을 나이입니다. 그러나 꼰대라는 말에 속상해 하거나 주눅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꼰대라는 말 속에는 역설적으로 수많은 지혜와 연륜이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꼰대들에게는 젊은이들이 체험하지 못한 소중한 자산이 있으니 곧 경험입니다. 경험은 가보지 못한 길을 가본 꼰대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녹아 있는 나침판이며 지혜의 보고입니다. 정글을 헤쳐가자면 누군가 앞장서서 살이 베이고 가시에 찔리는 아픔을 겪으면서 그 정글을 헤쳐 나가야 그 일행은 목숨을 구합니다. 그 두려움과 공포를 무릅쓰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앞장 서 간 사람들이 바로 개척자요 지도자며 요즘 젊은이들이 말하는 소위 꼰대세대들입니다.

필자는 어려서 이런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우리나라가 중국의 눈치를 보며 속국 비슷하게 살 때 어느 날 중국사신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왕에게 숙제를 냅니다. 물론 답을 맞추지 못하면 많은 공물을 바쳐야 한다는 겁박도 함께 했습니다. 출제한 문제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똑같은 생김새와 크기를 가진 말 두 마리를 매어놓고 어미와 새끼를 구분하라는 문제였고 또 하나는 목침을 놓고 어디가 뿌리 쪽이고 어디가 가지 쪽 인지를 알아내라는 문제였습니다. 임금이 머리를 싸매고 답을 구하고자 했으나 전혀 알 길이 없고 신하 중에서 그 답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날짜가 다 되어 임금이 궁지에 몰리게 되었을 적에 한 신하가 주춤주춤 임금 곁으로 다가 오더니 머리를 조아리며 답을 말합니다. “두 마리 말 앞에 건초를 던져 줄 때 그 건초를 먼저 먹는 말이 새끼말이며, 목침을 물에 띄워 조금 가라앉는 쪽이 뿌리 쪽입니다.”

임금이 무릎을 치며 정해진 날 중국사신에게 답을 말하니 사신은 감탄하며 과연 조선은 인재가 많은 나라라고 탄복하고 귀국했다는 설화입니다.

어찌 그런 현답을 생각해 냈느냐고 왕이 묻습니다. 신하가 대답합니다. “전하 소인을 죽여주시옵소서. 저에게는 70되신 아버님이 계신데 국법을 어기고 고려장을 시키지 않은 채 집 골방에 모셨사옵니다. 제가 근심 어린 얼굴을 하자 아버지께서 그 현답을 말씀해 주셨사옵니다. 죽여주시옵소서.” 그 뒤로 왕명으로 고려장을 없앴다고 합니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꼰대수구 꼴통이라고 낮추어 부르며 지금의 무대에서 사라지라고 합니다.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꼰대들은 슬퍼집니다. 하지만 우리 꼰대들은 이 나라를 이만큼 키워온 데 대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필자가 중고등학생이던 1950년대 초반에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57불이었습니다. 가난에 헐벗고 굶주리며 초근목피로 연명했습니다. 하루에 왕복 수 십리를 걸어서 통학하며 등잔불 아래에서 공부했습니다. 철 따라 농사도 지었고 휴일이면 산에 올라 낫에 손가락을 베이며 땔 나무를 마련했고 가정교사로 생활비를 마련하고 아버지가 귀한 소를 팔아 마련해 준 등록금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현재의 장충동체육관을 지어 기부한 나라가 필리핀이라면 이해하겠습니까? 6.25 때 겪은 고생 얘기를 하면 라면이나 피자를 먹지 그랬느냐는 요즘 어린이들을 보면 이건 한 세대 차이가 아니라 한 세기 차이입니다. 독일에 가서 노인들 시체를 닦은 간호사와, 1000미터가 넘는 지하갱도에서 석탄을 캔 광부와 월남전에 참전해 고엽제를 들이마신 국군장병들이 있어 오늘의 부를 축적한 역사적 사실들을 잊은 채 이미 당신들 세상은 지났으니 물러나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오늘의 한국을 세웠고 그 여력으로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결혼시켰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아들딸들은 덜 고생하고 오늘의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데 잔소리 그만하고 알량한 부모의 권위마저도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산업화에 희생된 꼰대들이 슬프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리가 없으면 강을 건널 수 없습니다. 계단이 없으면 2층에 올라갈 수 없습니다. 1+12라고 꼰대가 가르치지 않았으면 지금의 IT니 융복합이니 하는 4차산업혁명도 없었을 것이고 국민소득 28000불로 집집마다 자가용을 굴리는 풍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고생 고생하여 풍요의 시대를 열어놓고 나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라는 말로 꼰대들을 퇴출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 어렸을 적에는 말야...” 이 말이 가장 듣기 싫다고 젊은 세대들은 말합니다. ‘우리 어렸을 적이없이 어떻게 이처럼 잘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해답 없이 그냥 이 무대에서 내려가라고 합니다. 소위 무조건입니다. 어찌 억울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고은 시인이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꽃, 내려올 때 보았네라고 읊었듯이 꼰대들이 만들어 놓은 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세대들이 막상 사다리를 없애버리면 무엇을 타고 내려오려고 그런 망말을 합니까?

꼰대들에게는 아직 다 풀지 못한 지혜의 보따리가 있고 소중한 경험이 남아 있습니다. 고려장을 당할 뻔한 70꼰대가 없었다면 어찌 임금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겠습니까? 역사는 단절이 아니라 계승입니다. 좋은 가치는 취하고 못 된 가치는 버리는 과정이 역사의 진화입니다. 자기 살을 발라 어린 자식들에게 먹여 살리고 자신은 빈껍데기로 죽어가는 우렁이 꼰대들을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등을 떠다미는 요즘 젊은이들이 내 자식들인지 깊은 자괴심마저 들만큼 마음이 허전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자산을 남겨 놓는 건 데 하고 후회한들 버스 지난 뒤 손 흔들기입니다. 그 옛날, 상사들에게 시달리고 자식들한테 치받치며 악착같이 돈을 번 결과가 결국 꼰대소리를 들으려 한 행동이라면 되돌릴 수 없는 젊음에 속울음을 울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이미 꼰대의 권위는 상실했습니다. 설 수 있는 영토가 없습니다. 이제라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덜 꼰대소리를 들을지에 온 촉각을 세우고 온라인에 떠도는 꼰대가 덜 되기 위한 꼰대의 6하 원칙을 전투적 긴장감 속에 암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꼰대의 ‘6하 원칙’ : WHO(내가 누군지 알아), WHAT(뭘 안다고), WHERE(어딜 감히), WHEN(왕년에), HOW(어떻게 나한테) WHY(내가 그걸 왜)를 속으로 주기도문처럼 외우시기를 60세 이상의 꼰대들에게 감히 권합니다. 그래야 그나마 이 자리라도 유지합니다. 60살이 넘은 1000만명의 꼰대들이 젊은 세대에게 합창합니다. “내 인생을 돌리도...“라고. 그리고 적어도 세 명 이상의 아들딸들을 키우며 공부와, 취직과, 결혼과 집장만에 모든 것을 내준 꼰대들에게 사회보장제도 같은 노후대책도 마련해 주지 않고 광야로 나가라면 후일 당신들의 자식들이 똑같이 주장할 때 그것을 용납하겠는지 묻습니다. 한 두 명의 자식들 사교육에는 엄청난 돈을 투자하면서 부모 공양할 돈은 없다고 합니다. 교육제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그리고 노인들의 일자리를 마련해 주지 않는다면 꼰대의 빈곤은 악순환을 거듭할 것입니다. 국가와 젊은 세대들은 꼰대들을 보살필 의무가 있습니다. 그 옛날 고려장하러 부모를 지고 간 지게를 버리려 할 때 아들이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큰 소리로 들려드리죠. ”왜 버려요? 이다음 아버지 고려장 할 때 아버지를 떠메고 산으로 들어가려면 이 지게가 또 필요한데요.“ 시인 이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