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아강 3부

3-2 부치지 못한 편지 묶음

락운강촌 2014. 3. 3. 19:34

 

은  아  강

(3-2)

 

락운강촌 

 

 

 

@ 부치지 못한 편지 묶음

 

 

  차량 운행을 잠시 멈추고 아무리 급해도 미리 전화를 하고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휴대폰 통화를 시도했으나 은숙(은아)이

아예 휴대폰을 꺼놓고 있다는 안내 멘트만 울릴 뿐. 

 

 

은아집에 도착했으나 언어상실증이 걸린 늙은 시어머니가 수화로

뭐라 하는데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지만

아마 은숙이가 아파서 시내 병원에 갔다는 의미인 것 같았다.

 

 

- 도대체 갑자기 어디가 아플까?-

 

그런데 그 거의 100세나 되어 보이는 할머니가 무슨 가방을

내밀기에 받아서 열어보니 ‘부치지 못한 편지’ 제하의 편지 뭉치였다.

 

 

은아는 자신이 그동안 내게 써 놓고도 부치지 못한 편지들을

내게 보내 우선 자신의 실체를 이해하게 해 놓으려고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잠시 나를 피하겠다는 의도인 것으로 짐작되어

바로 되돌아 와 그 편지들을 읽기 시작했으니.....

 

 

<부치지 못한 편지 1> 

 

  현아님이 군 입대하면서 주고간 편지 한 통을 몇 번이나 되읽으면서

눈물만 펑펑 흐느껴 울다가 이 답장을 씁니다. 

 

사랑하는 현아님!

현아님이 군 입대하던 날

 

죄 많은 당신의 여인이기에 감히 ‘저 여기 있습니다.

은숙이가 아니고 은아예요.’라고 선뜻 나서서 현아님 품에

안길 수도 없었습니다.  

 

제가 현아님을 잘못 인도하여 아니 잘못 유인하여

이렇게 현아님의 청춘을 허망하게 망친 죄.

어차피 용서 받아서도 안 되지만

감히 현아님이 아직도 저만을 사랑하신다니

죄송하기 그지없습니다. 

 

물론 현아님 편지에서도 회상하셨듯이

우리가 그날 헤어지면서 타이타닉호 침몰 때

스트라우스의 아내가 우리 부부는 40년을 함께 살아왔는데

이제 와 떨어져 살 수는 없다면서 여자들에게 우선 내준 구명정에

오르지 않고 남편과 함께 가라앉는 배에 남았듯이

우리는 그렇게 해로동혈(偕老同穴)하자고 맹세한 건 사실이었지요. 

 

하지만

며칠 전 현아님이 편지에서 밝혔던 그 분!

현아님에게 쑈킹한 충격을 주어 그 정보수사부대에 입대하게 했던 분,

즉, 제가 생지옥에서 탈출할 때 뜻하지 않게 큰 폐를 끼쳤던.....

저에게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던 분.

그 김재경 씨에게 사죄하러 감히 찾아 갔었습니다. 

 

마침 그분은 그날 원하는 국가기관으로부터 합격 통지를

받던 기쁜 날이었습니다.

 

물론, 한없는 축하를 드림과 아울러 지난번에 어쩔 수없이

죽을 죄를 지었다고 진심으로 사죄드렸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큰 은혜를 받았으니 꼭 갚고 싶은 심정도 말씀드렸고요. 

 

그분은 단 한마디로 저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 ‘살아 있어서 고맙고 모든게 새옹지마(塞翁之馬)로 여기고

   있으니 크게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라고... 

 

그리고 덤으로 현아님과의 관계를 말씀 드리며 도움의 말씀도

부탁드렸더니 그분은 현아님에게 쑈킹한 충고를 주었듯이

저에게도 엄청난 충격을 주셨습니다.

 

물론, 저는 이미 현아님에게 더 이상 짐이 되지 않겠으며,

저 대신 생명을 던진 은숙 언니의 뜻을 받들어 아들을 잘 키워

은숙언니의 시댁인 임씨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사명(使命)을 안고 있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아님을 너무도 사랑하고 있기에

제 심정을 솔직히 토로한 것이었지요.

 

하지만 그분은 제가 현아님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현아님 곁에서

하루 빨리 영원히 말없이 떠나라 하셨습니다.

 

- 그분이 복무했었고 지금 현아님이 가 계신 그 기관은

신원이 철저히 보장되어야 하는데 그 예로서 결혼을 하더라도

배우자 신원조사를 거쳐야 한다고 한다더군요. 

 

만약, 현아님과 제가 결혼을 한다면 사전 신원조사 결과에서

그 기관 수사요원을 사살하고 도주한 엄청난 죄인임이 밝혀지고

결혼은커녕 현아님마저 대학 운동권 전력이 드러나게 되어

그 기관에서 퇴출되게 규정되어 있더군요.

(관운이 닿아 현아님은 이미 신원조사를 무사히 통과하였는데

이제 와서 탄로되어 인생을 망쳐선 안됨을 저 너무도 간절히

빌고 있으니 그런 일은 절대 있어선 안되겠지요.) 

 

현아님!

내 사랑하는 현아님의 앞날을 위해, 님의 무운장구를 위해

제 운명은 죽을 때까지 은아가 아닌 언니 은숙으로 살아야 함을

절실히 깨달아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현아님이 저를 은아가 아닌 은숙으로 알고 계심이

저로서는 얼마나 다행인 지 모르겠습니다.

천만다행으로 감사하면서 부처님께 조석공양을 올리면서

님의 건온하심을 기원드리렵니다.

보고싶은 현아님! 이 편지는 부치지 못한 채 간직되겠지만....

항시 님의 무운장구를 비옵니다.

부디 안녕히..... 

 

 

진실을 감출 수는 있어도 없앨 수는 없는 법

그러나 은아는 철두철미하게 자신을 감추었었다. 

 

내가 은숙에게 은아가 뛰어들었던 강물 낭떠러지 벼랑벽에

‘은아강’이라 새기고 싶다면서 그해 초여름

그 강 벼랑 위 구릉지에 한 사흘 정도 머물기 위해

군 훈련 과정에서 익힌대로 3인용 비트(beat: 간첩 활동 따위의

은밀한 활동을 하는 사람이 숨어 지내는 곳. ‘비밀 아지트’가 줄어든 말)

굴설(掘設)하였을 때

거기에서 나와 함께 밤을 보내면서까지도

은아가 아닌 은숙으로서 나를 사랑했었다. 

 

그날

비트를 다 굴설하자마자 날이 어두어져 저녁 식사를 하려는데

누나가 너무도 고맙다면서 김밥과 음료수,

그리고 소주와 샴페인을 들고 나타났었다. 

 

반주를 곁들여 식사를 마치자 누나는 약 오리 쯤 떨어져 있는

자신의 집으로 가려다 말고 내 비트로 되돌아와서는

너무 어두워 못가겠으니

여기서 감히 자고 가도 괜찮겠느냐고 물어왔다.

 

 

 

mp3


& 3-3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