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아강 3부

3-6 큰 누님과의 애틋한 사연

락운강촌 2014. 3. 3. 19:26

 

 

은  아  강

 

(3-6)

 

락운강촌

 

 

@ 큰 누님과의 애틋한 사연

 

“ 나.. 은..아인데 그렇게도 몰라..봐 봐요?”

“ 은아라고요?”

 

그러나 잠을 깨고난 그녀는 무슨 소리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는

간밤에 항공대 간부들과 통닭 / 소주·맥주를 시켜먹다가

배달온 분이 형부였다는 엉뚱한 얘기를 했다.

 

" 형부라뇨?"

" 우리가 3자매인데 맨 위 언니가 군대 하사관 한테 시집가서

  어렵게 살고 있었는데 몇 년 전에 형부가 군생활 중 무슨 사고를 쳐

  불명예 제대 후 남양주에 살다가 근간에 파주 어딘가로 이사해서

  구멍가게를 운영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가 보지는 못했는데 

  바로 이 부대 앞에서 통닭구이집을 하고 있더라고요."

" 부대 후문에 있는 치킨집이 바로 언니네였다고요?"

 

우리는 그 언니인 은희 누나집으로 가서

나는 지난 밤 야근을 하고 오전엔 보장된 휴식이었고,

은숙은 밤새 음주로 술이 덜 깬 상태에서 해장이 급한 상태였기에

오랜간만에 부담없는 휴식을 취하고 은숙은 홍천으로 무사히 돌아갔다.

 

" 누님이 바로 은희 누나였어요?"

" 보안관님이 그럼 우리 어머니 장례 때 은아 따라 문상왔던

  그 분이셨네요."

" 이제 서로가 알게 됐으니 말 놓으세요, 큰누님."

" 새삼스레 반갑구먼, 동생! "

 

나는 이런 사연으로 한 집안의 세 자매를 누나로 인연을 맺게 되었었고,

거의 한 달에 한두 번씩 면회오는 은숙과는 자연스럽게

이 큰 누님 집에서 데이트가 이루어졌다.

 

그렇게 은희 누님과도 점차 깊은 정에 몰입되고 있던 늦겨울

내 생일 날 저녁- 즉, 1976년 11월 22일 / 음력 10월 초하루

그날 아침에는 일요일인 간밤에 과음한 채 외박하다 늦잠으로

아예 출근도 못했을 정도였는데

하필 그날 10:00에 본부에서 업무 감사 수검을 앞두고

전 직원 사격측정이 계획되어 있었기에 내 직속 상관인 부관이

나를 찾아 읍내의 각 여관을 수색했지만 나를 찾지 못한 채

본부에는 감기 몸살로 링거를 맞고 있다는 거짓 핑계를 댔고....

 

 

하지만, 오후 본부로부터 돌아온 근 대 선배 부관(상사)으로부터

정말 엄청나게 얻어맞고는 서러움을 안고 큰 누님집에 갔는데

얼굴이 부어 오른 모습을 본 누님이 약을 발라 주시면서

도대체 왜 맞았느냐고 묻기에 마치 어린 유치원생이 엄마에게 이르듯이

울먹울먹하면서 사실대로 말씀드렸더니

 

 

" 어쩌면 우리 남편 하는 짓과 똑같은가?"

" 뭐가 똑같아요?"

" 우리 남편도 군대 생활 할 적에 생일날 아침상을 차려 놓고 기다렸더니

  외박하고 늦게 출근하고는 점심 때에나 들어오기에

  그때까지도 치우지 않고 있던 생일상을 뒤엎으며

  대낮부터 부부싸움을 크게 하고 말았었는데 너도 똑같다는 거다."

 

" 생일 날 아침 남편 안 들어온 것 하고 제가 왜 똑 같다는

  것인지...전..도무지..."

" 너 오늘 생일이잖아?"

 

 

그제야 달력을 보니 그날이 내 생일이었다.

큰 누나는 지난 주에 은숙이 면회와서 내 생일에 미역국이나 챙겨

주라고 당부했기에 아침부터 기다렸단다.

 

군대 와서 맞이한 첫 생일.

아침도 못 먹은 채 엄청 두들겨 맞고

뒤늦게 누님이 차려 주시는 생일상을 받고는

처량한 신세에 솟아오르는 눈물에 목이 메였다. 

 

" 군대 생활이 생일 날 얻어맞기도 하는... 다 그런 거야."

누님은 목이 메여 식사를 못하고 있는 나를 꼬옥 안아 주시면서 위로했고,

누님의 포근한 가슴에 안겨 있자니 마치 엄마 품속이었다.

 

고향인 강원 영동지방 사투리에 경기말을 익혀 약간 볼륨 있는 애교스런 말씨,

나이는 당시 33세, 적당한 키에 한복 입으면 어울리는 우아한 몸매.

아이를 둘이나 낳았어도 젊음 그대로를 유지하는 특수체질.

이런 여인이 은아 누나와의 인연으로 맺게 된 의남매의 큰 누님이었다.

 

은숙 누나가 왔다간 어느 일요일 밤.

큰누님은 나를 앉혀 놓고 쌀 막걸리 한 잔 따라 주시면서 긴 훈계를 했다.

" 지금까지 쭉 지켜봤는데 동생이 꼭 우리 남편의 전철을 밟는 것

  같아 내가 누나로서 도저히 그냥 간과할 수가 없다.

  우리 남편도 자네 같이 젊었을 적에 매일 술 먹고 사고치고

  부대에서는 찍혀서 겨우 중사 만기로 제대해서 동생도 보는 바와

  같이 지금도 뚜렷한 직업도 없이 저 모양 저 꼴이다.

  제대 후 이 구멍가게 마저도 사실상 내가 운영하고 있을 뿐,

  도대체 가정을 어떻게 꾸려 나가겠다는 구상도 없이 낮에는

  가끔 치킨 배달은 하고 있지만 주로 이리저리 떠돌다

  밤에 늦게 돌아와서는 술주정이나 하고 저렇게 산다.

  너도 단기 의무복무나 하고 제대 한다고 하지만 인생이란 장담할 수가 없다.

  장기복무가 되어 계속 군 생활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록 제대하더라도 군대에서 충실한 생활습관을 가져야

  사회에 나가서도 올바른 인생을 살게 된다.

 

  오늘부터 식사는 물론 술은 되도록 우리 집에서 마셔라.

  은숙이가 자신이 부담하겠다고는 했지만 그와는 별도로

  결코 공짜가 아니다.

  네가 돈이 모이면 알아서 갚을 수 있는 만큼만 갚아라.

  또, 가끔 면회오는 은숙이를 부대 네 사무실까지 데리고 가서

  동숙하는 것 같은데 보안관이 그러면 항공대에서 널 어떻게 보겠냐?

  두려워하기는커녕 장난감 취급 받는다.

 

  나도 몇 년 전까지는 군인가족이었기에 군에 대해 좀 아는데

  보안관이라면 아무리 술을 먹어도 취한 모습을 보이면 일반

  부대에서 얕본다.

  그리고 너희 부관님이 우리 남편과 동기라서 그전부터 잘 아는데

  이미 며칠 전에 부관님에게 너의 봉급에서 강제로 절반을 떼어서

  적금 부으라고 부탁했으니 아마 다음 달부터는

  너 그 실 수령액 갖고는 아마 엄청난 궁핍을 겪을 거다.

  그러니 정신 차리고 이제 사람답고 보안관답게 살아라!

  이 큰 누나가 그렇게 만들어 줄게."

 

 

그랬다.

옛날 그 적다는 월급에서도 절반이나 떼어 강제 저축을 해야 했고,

그 순간까지의 다소 방종스런 생활에서 탈피되어

누님의 통제를 받는 착실한 동생이 돼 버렸다.

 

때로는 생활적 자유가 위축되어 '괜히 누님 만났구나!' 하는 후회도 했었지만

점차 누님의 고마움을 절감하게 되고 있었다.

 

그 후,

누님은 항공대 후문 옆에서 구멍가게를 겸한 통닭구이, 그리고

쌀 막걸리를 취급하면서 병사와 간부들로부터 듣게 되는

온갖 유용한 정보 자료를 적시에 제공해 주었다.

 

병사들의 애로사항들은 기본이고 전방 T탑 관리 소홀로

항공기 월선 우려 실태, 한전 고압선의 항공 안전장치 부실로

민· 군 항공기 비행사고 우려 실태, P· X 관리병의 잔금 횡령,

병사들의 사제 우편물 이용 실태,

심지어는 유류 관리관의 항공유 부정 매각 첩보와 군량미 민간 유출 건 등등

 

이루 셀 수 없는 정보 자료들을 수집하여 꼬박꼬박 나에게

제공했고, 나의 본부에서는 이른바 무실적 부대원이었던 자가

갑자기 유용한.. 아니 성과 거양 보고서를 계속 상보하여

보직 첫 해에 연말 우수부대원이 되는 영광을 차지하자

역시 대학 문턱에라도 갔다 온 자원이 뭔가 다르다느니 하면서

다시 평가하게 되었는데 이런 결과는 모두 누님이 만들어 낸 작품이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 동생! 항공보좌관(소령으로 항공대에서는 Ⅱ맨 역할)이 너 처음

  보직 됐을 때 보안관 군기 잡겠다고 헬기(당시엔 OH-23G기) 탑승을

  유도하고는 고의로 상하좌우로 아주 험한 곡예비행을 하여 네가

  오줌까지 싸더라고 떠들고 다닌다는데 너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잖냐.

  내가 파악하기로는 술집 '춘천 집' 박 양이 그 보좌관 애인이란다.

  내가 뒷돈 대 줄 테니 수단껏 그 얘를 꼬여서 보좌관 숙소로

  처 들어가 당당히 네 애인이라고 소개해라. 그러면 아마 보안관

  앞에서 화도 못낸 채 장교 자존심상 속으론 화도 못 내고 엄청

  난처해 할 거다."

 

참으로 교활한 누님이었다.

그러나 나는 누님이 시키는 대로 그 항공보좌관을 그렇게 골탕 먹이고는

당당하게 일침까지 놓았다.

" 감히 보안관을 오줌 싸게 만들어 놓고

  무사히 보직을 마칠 수 있다고 생각하셨습니까?

  도대체 비오는 날 O-1A기 운항했다고 서류 위조해 놓았던데

  그렇게 해서 남은 항공유는 어디 가 팔아먹었습니까?" 

 

이후 그 분이 떠나실 때까지 그 분의 상관은 직속 상관인 항공대장이

아니라 사실상 파견나온 이른바 ‘보안관’인 나였다.

 

그러니 나의 알찬 보고는 계속 유지될 수 있었고,

유능한 간부로 평가받다보니 그제야 나는 사는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옛 말에 좋은 일에는 '마'가 낀다고 했듯이 약간의 오해에서 비롯된

내신상에까지 변화가 생기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어느 날 피곤해서 누님 집 아랫목에서 잠이 들었었는데

누님도 옆에서 잠들게 되고 잠결에 서로를 꼭 껴안고 자다가

이를 밖에서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매형(남편)이 목격하게 된 것이다.

(사실은 중간에 잠이 깼었지만 나는 잠든 척 누님 가슴을 살살,

그러나 과감히 더듬기는 했었고, 누님도 저를 안은 팔에 힘을 주어

내가 '헉' 숨이 멎기도 했었지만...)

 

 

그 자리에서는 다른 핑계거리를 대며 술주정하고 부부싸움으로 이어졌지만

그런 일은 늘 있어온 그네들의 부부싸움인 것으로 간과한 채

무심코 지내고 있었는데.... 

 

며칠 후 부관님이 나에게

"너 누님인가 하고 간통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행실을 똑바로 해라.

내가 아예 본부와 협조해서 보직을 저 멀리 있는 군단반으로 보직

변경했으니 떠날 준비 하거라."

 

이게 무슨 억울한 날벼락인가?

 

 

Only You / Giovanni Marradi 外 7곡

 

@ 3-7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