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연리근
은 아 강
(3-9)
락운강촌
@ 연리근을 보면서
도동항 뒷산을 올려다보니 아스라이 향나무가 보였다.
“ 저 향나무와 아까 본 저동 촛대바위 중 한 그루는 2000년이란
나이를 지니고 있대요.”
“ 2천 년요? 우리도 나목(裸木)이 될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잘못 살아온 人生을 가을에 한번씩 낙엽으로 청산하고
새봄이 오면 다시 시작하는 재생의 기회를 가질 수만 있다면...”
“ 왜 그런 쓸쓸한 생각에 잠겨요?”
“ 그만큼 요즘 내가 외롭고... 지난 날이 후회스럽고...그래서
우울하고... 하여튼 내 마음 나도 모르겠어요.”
은숙의 쓸쓸함을 저동 해안가 몽돌에 묻어두고
도동 시장에서 생오징어와 문어발, 그리고 약간의 반찬거리를
구입하여 아파트에 도착하여 우리는 함께 오순도순 요리로써
다시 다정한 연인 사이로 돌아왔다.
“ 우리 여기까지 왔는데 내일부터는 맛집을 돌아봐야 하지 않겠어요?”
“ 아까 우리가 이용한 택시 기사님이 준 울릉도 안내 팜프렛을
대충 보니까 나리분지 식당 산채 비빔밥이 유명한데
우리가 성인봉 등산을 포기했으니 나리분지엔 못가겠고..
약초를 먹여서 키운 약소불고기는 사동 ‘울릉약소숯불가든’이
유명하고 도동에 있는 ‘두꺼비식당’은 오징어 내장탕이 유명하답니다.
내일 아침은 여기서 먹고 버스로 한 바퀴 돌아보는 게 좋겠어요.”
“ 기대 되네요.”
“ 또 있어요. 북면 천부리의 만광식당 ‘따개비찹쌀수제비’라는 건데
따개비는 손톱 2배 정도 크기로 딱 전복 모양으로 생겨 바위에
붙어서 산답니다. 7,000원씩입니다.
그리고 아주 비싼 메뉴도 있는데 자연산 전복을 넣어 끓인
닭백숙으로 무려 35만 원 이상으로 미리 주문을 해야 한답니다.”
“ 아무리 비싸도 이번 여행 경비는 제가 부담하기로 했으니
기왕이면 그걸 한번 먹어볼까요?”
맛집 얘기를 하면서 저녁 식사를 하려는데 울릉도 담당
후배가 직접 담근 오미자술을 한 단지 가지고 왔다.
귀한 술에 맛있는 해물 안주.
우리 셋은 밤이 이슥해질수록 몽롱해져 갈 수밖에.....
“ 선배님은 어떻게 여행지를 남들 흔히 가는 제주도나 한려수도가
아닌 울릉도로 선택하셨어요?”
“ 우리 아내가 다른 데는 다 가 봤는데 울릉도를 못 가봤다고 해서...”
“ 내일 울릉도 일주를 하시면 알겠지만 우선 육지에서 듣던
헛소문부터 알고 돌아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 헛소문?”
“ 울릉도 하면 호박엿이 유명하쟎아요. 사실은 울릉도에
후박나무가 많아서 후박나무엿을 만들어 팔았는데 육지 사람들이
후박엿을 호박엿으로 잘못 알아듣고 소문이 나서 어쩔 수 없이
울릉도에서는 생산도 안 되는 호박을 들여와 호박엿을 만들고
있습니다.
또 울릉도 약소고기가 유명한데 울릉도에서 소를 키울 초원이 없어
횡성한우를 들여와 한 1주일간 약풀을 먹인 후
약소를 만들어 마치 울릉도에 목장이 있는 것처럼 광고하고
있을 뿐 여느 쇠고기와 별 차이 없습니다.
“ 내일 약소고기를 먹기로 했는데 그럼 뭘 먹나?”
고마운 후배는 여러 가지 여행 정보를 알려주고 돌아가고 난 후
은숙은 잠자리를 파고들어 가슴에 안기면서
“ 아까 후배님한테 '우리 아내'라고 해 주시는데 속으론
얼마나 고맙고 마치 부부인듯 착각되어 행복했어요.”
“ 함께 있을 때만큼은 우리는 엄연한 부부쟎아요.
사실 우리는 전생, 아니면 후생에선 어차피 부부연을 맺고야
말 거예요. 꼭 그렇게 되자고요. 누나!”
은숙의 허벅지 바깥 부분을 쓰다듬으며 위로 올라가자 확 퍼진
엉덩이의 곡선에 이어 실크인 듯 부드러운 감촉의 살집이
내 손바닥 가득 들어오고...
은숙은 슬며시 뒤로 돌아누워 브래지어 끈에서 양 팔을 빼더니
그대로 끌어내려 뒷 끈을 앞으로 돌려 잡고 풀어주었기에
나는 뒤에서 안으며 부드런 가슴을 풍선인듯 튕기는 탄력을
마음껏 음미했다.
“ 현아님, 이렇게 꿀물같은 행복에 젖으면서 다시 이삼십대로
돌아간 듯 하네요.”
“ 그때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누나는 그때 거기서 멈춰있어요.”
“ 거짓말이라도 고마워요.”
이미 누나는 젖을 대로 젖고 익을 대로 익어 꼭지가 물러 떨어지는
열매처럼 향기가 짙고 질펀하여 서로의 이성을 마비시켜
동화 나라의 환상 속을 헤매게 했다.
여행 이틀째
버스 투어를 택할까도 생각했지만 좀더 자유스러움을 감안,
일반 완행 버스를 이용하여 괌음도를 구경하고 난 후부터
서쪽 해안을 따라 한 바퀴 돌고나니 저녁나절이 되어
피곤이 쌓여 일찍 잠자리에 들어 벌써 사흘째 아침을 맞고 말았다.
오전 동안 봉래폭포와 독도전망대를 돌아보고
중식후 다시 포항행 여객선에 올라 1등석 지정석에 자리해보니
탁트인 동해 바다와 거친 파도가 가슴을 후련하게,
또는 거친 인생 항로를 되돌아보게도 하는 여유를 만끽하게 했다.
“ 2박 3일로는 울릉도 여행이 충분치는 못했지만
인상에 남는 곳이 어디예요?”
“ 예림원의 연리근을 보면서 왼쪽은 풍계나무,
오른쪽은 느티나무. 그 사이의 한 뿌리가
서로를 연결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현아님과 나의 관계인 듯....연상되더군요.
그러니까 종류가 다른 나무끼리라는 것은
부부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연결하고 있음은 서로를
너무나 원하고 있는 우리들의 애틋한 연심을
상징하는 듯 하더라고요.”
“ 그러네요. 저는 한국 10대 비경인 태하리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검은 염소가 우리들 위에서 바위돌을 굴리며 위협했던
장면을 잊지 못하겠어요. 자신들의 지역에서
포옹하고 있는 모습에 아마 질투를 못참아 훼방을
놓았을 거예요.”
우리들의 밀월여행은 순조로웠고 나름대로 의미 있었다.
그런데 경주 불국사에서 은숙은 뭔가 이상해져 있었다.
석굴암에서 부처님께 뭔가 한참을 빌고 있었다.
“ 불신자도 아니신데 부처님께 뭘 그렇게 오래 불공을 드리셨어요?”
“ 느끼는 바가 있어요. 아마 현아님과 저의 만남은 여기서
끝인가 합니다. 그래서 현아님의 무사하심과 영생하심을 비롯해
저의 온갖 소원을 한꺼번에 기원드렸어요.”
“ 시주도 많이 하시는 것 같던데.....”
“ 울릉도에서 35만 원짜리 닭백숙을 못 먹은 대신이었지만
그것도 모자라지요. 내가 얼마나 현아님에 대한.....
그만할게요. 내가 제가 너무... 뭐 좀 그렇네요.”
우리들만의 여행을 무사히 무사히 마치고 귀가한 후
은숙(은아)는 또다시 전화를 비롯한 나와의 일체 접촉을 회피하였다.
하긴 만약을 대비해서 우리는 서로의 휴대폰 문자 교환이나
휴대폰 내의 누나 사진 등은 철저히 남기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명으로 비상 통화 여지를 저장해 두고 있었으나
이마저 은숙은 받지도 보내지도 않았다.
그런데 2009년 7월 초순 어느날
갑자기 휴대폰 문자 메시지가 날라왔다.
' 7.18. 그곳에서 뵙겠습니다. '
@ 3-10 마지막편에서 종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