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래올 전원일기 5 】산책 유감(散策遺憾)
락운의 가래올 전원일기 (5)
가래올 락운
o 산책 유감(散策遺憾)
경기 일산 거주 시에는 주말마다 새벽, 또는 초저녁에 호수공원이나 정발산, 고봉산 등으로
아내와 함께 산책을 즐겼었다.
이곳에서도 산책로 개발을 위해 온지 며칠 뒤인 4월 중순.
우리는 늦저녁 식사 후 작년 여름 피서를 즐겼던 냇가로 향했다.
일산에서 안 보이던 별들이 모두 이곳 시골 하늘에 와 있었다.
아마 도회지 매연을 피해 모두 시골로 이사를 왔나보다.
냇가 모래밭으로 별똥별이 ‘나 찾아봐라’ 하면서 순식간에 숨어버린다.
냇물이 너무 맑아 깊이 잠긴 달이 찰랑찰랑 일렁이고 있었고,
우리는 너무도 좋아 멀리서 개 짖는 소리마저 정겨웠다.
개 짖는 소리
다음 날 밤에는 동네 반 바퀴를 돌았다.
가로등은 한두 개 정도일 뿐이어서인지 달빛이 유난히 밝았고,
초저녁인데도 벌써 불 끄고 곤한 잠에 빠져들어 아무런 인기척도 없이
개들만 요란하게 짖었다.
다음 날 우릴 당황하게 하는 소문이 들려왔다.
냇가 쪽 집 홀로 사는 할머니와 교장 출신 부부가 심한 말다툼을 했단다.
이유는 그 할머니가 교장출신 부부에게
“ 남편 잃고 혼자 사는 여인 애간장을 태우려고 야간에 부부가 냇가 쪽으로 나와
손잡고 산책하느냐?”고 나무랐고, 교장 부부는
“ 당뇨병 환자가 야간에 어떻게 냇가 쪽으로 산책을 했겠냐? 생사람 잡지 말라”며
싸웠단다.(우리 때문인가? 우린 손잡고 걷지는 않았는데......)
이 소문을 우리에게 전해준 여류 동양화가는
“ 우리도 여기 온지 얼마 안 되어 늦봄쯤에 야간 산책을 하다 토착민들로부터
낮에 농사일로 피곤하여 일찍 자는 사람들 생각도 안 해 주고 밤중에 쓸데없이
돌아다녀 개 짖는 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다는 항의를 받고, 사과한 적이 있으니
농사일 바쁠 때는 되도록 야행은 자제해야 한다.”고 충고해 주었다.
그 외에도 외지 전입 주민들로부터 토착민들과의 마찰 위험이 되는 조심해야
할 것들 여러 가지를 들으면서 속으로 지난번 토착민 후배로부터 듣게 된 외부 전입자들에게
조심해야 할 것들과 대조해 보았다.
양측 모두 일리(一理)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단시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에 어떻게 서로를 융화시켜야 할까에 대해
내 스스로에게 숙제로 남기고 말았다.
우리는 한동안 야간 산책은 물론 새벽 산책도 포기하고 있다가
한 달여가 흐른 주말을 맞아 모처럼 가래올 골짝 길을 새벽 산책로로 잡았다.
3㎞ 정도의 오르막 길
이미 재작년 컨테이너 임시 거주 당시 가 보았던 비포장 넓은 1차선 도로다.
예전에는 이 골짝에 서너 가구가 살고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흔적도 희미하고
친환경적 무공해 농작물이 재배되고 있을 뿐, 인적 드문 골짝이다.
처음 이 길을 답사하면서 차량 왕래도 별로 없는 이 도로가 왜 존재하는지
의아해서 옆집 아저씨에게 물으니 옛날 일제시대에는 '동창'이란 곳이 면 소재지였기
때문에 이 도로를 이용했었는데 당시엔 보기 드문 차량 통행로였고 지금은
아마 군사도로이거나 지방도로 관리되고 있기 때문에 제법 양호하게 관리되고 있단다.
어쨌든, 이런 깊은 골짜기가 존재하는 데에 대해 행운으로 여길 수밖에...
도로 옆으로는 제법 큰 개울이 흐르고 양쪽으로 가파른 산에는 천연림이 무성하니
분명 산나물도 많을 것이며, 온갖 새들의 고향이기에 새벽 산책로로는 최적이었다.
그러나 막상 올라가보니 친환경적 농작물을 재배 한다더니 경작되고 있는 밭에는
우선 제초제 살포 자국이 뚜렷해 실망하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길 양쪽으로는 장뇌삼 등 특용작물 재배단지가 조성되면서
시꺼먼 인삼천과 철조망, 그리고 수없이 많은 경고판으로 겁을 주고 있었고,
특히 골짝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상당 거리가 시멘트로 포장되어 비포장 흙냄새를
차단하고 있었다.
산 정상을 포기하고 되돌아오는 내내 우리는 결코 상쾌하지 못했다.
- 제발, 아직은 그나마 인적 드문 산골짝이니 앞으로 관광지로 개발되지나 말고,
천연 수풀과 자연적으로 조성된 자작나무 가로수, 그리고 오염되지 않은 개울물이
오래 보존되어 지금처럼 새들이 지저귀고 다람쥐들이 릴레이로 길 안내를 해 주게 하소서-
집에 도착해서야 반기는 꽃 몇 송이 때문에 산책 유감이 말끔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