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겨운 소주잔 속 군대 이야기 4)
강촌 김락운
☆ 고문관과 꾀병 환자 이야기
고문관(顧問官)!
‘고문관’이란 낱말은 자문에 응하여 의견을 말하는 직무,
또는 그런 직무에 종사하는 전문가란 뜻인데
옛날 해방/건국 후 미 군정(軍政) 시대에 우리 한국군 부대에 군정 지도차
파견 나온 미군 고문관의 한국어를 모르는 약점을 이용해서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는 등으로 교묘히 악용하고는
그 어수룩하게 당하는 모습을 빗대어 공식 직함인‘고문관’으로 부르면서
어수룩한 자를 농조로 부르는 대명사가 되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군대에 학력 제한이 없이 징집 연령만 도달하면 입대하다보니
한글도 잘 몰라 고향 부모님으로부터 편지가 와도 옆에서 읽어 주어야 했고,
휴가를 보내 주어도 집(本家)을 못 찾아가기 때문에 똑똑한 병사를 동행하게
하는 등 갖가지 고문관이 참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쉽게 믿어지지 않겠지만
고학력자 위주의 입대 자원인 지금도 그런 고문관이 엄연하게 존재한다는 데에
있다.
나처럼 천성적으로 지능이 낮아서 쉽게 세상 적응을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을 포함한 군 생활 적응이 어려운 자들과 사고 우려자들은
각급 지휘관들이 소위 ‘관리 대상자’로 선정하여 집중 관찰하면서
어려운 과제나 훈련에서 열외 시키기까지 하는가 하면
아예 자신의 측근 당번병으로 보직하거나 단순 임무를 부여하기도 한다.
옛날 어느 중대에 이런 고문관이 있어서
중대장이 옆에다 두고 잘 관리하기 위해 자신의 당번병으로 임명하여
구두닦이나 사무실 청소 등의 허드렛일을 시키고 있었는데
하루는 중대장이 대대 본부 정기회의에 참석해 있다가
연대장이 불시에 관내 거점 진지를 순시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단 30분밖에 남지 않아 미리 그 거점에 가서 연대장을 영접하려면
도저히 중대까지 다녀 올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지금처럼 휴대폰 등 통신 수단이 원활했던 것도 아닌 당시로서
이른바 ‘딸딸이’라고 부르던 K-312 유선 전화로 중대 본부에 전화했더니
그 당번병이 받았다.
미덥지 못해 다른 간부를 찾으니 모두 자리에 없었기에
너무도 다급한 나머지 전화 받은 그 당번병에게 아주 상세하게
지시사항을 하달했다.
“ 잘 듣고 그대로 시행하라!
내 사무실 캐비닛 옆에 보면 매트릭스(Matrix)가 있다.
그걸 한 개도 빠뜨리지 말고 다찌차(3/4톤 차량)에 싣고
최대한 빨리 중대 거점으로 가져오라.”
중대장은 그 당번병의 정신적 연령을 감안하여 두 번이나 되풀이하면서
실수 없기를 간절히 기대하며 가슴 조리고 있었지만
역시 고문관은 고문관이었다.
그 당번병이‘ 매트릭스’란 그 어려운 영어 낱말을 이해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군에서의 ‘메트릭스’란 한 과업을 세부적으로 나누어 분석한 도표나
시행하여야 할 세칙을 의미하였지만
그 당번병은 매트릭스가 아닌 매트리스(mattress),
즉, 침대용 뚜꺼운 깔판담요로 알아듣고 중대내 매트리스 전량을 차량에 가득 싣고
산꼭대기로 덜그럭거리며 운반한 것이었다.
단차선 비포장도로에 매트리스를 가득 실은 차량이 너무도 저속력이어서
뒤 따라 오던 연대장이 내심 짜증을 내면서 동시에 거점에 도착했다.
“ 중대장! 매트리스를 뭐 하러 거점까지 운반하게 했는가?”
“ 죄송합니다. 제가 전화로 중대에 지시하면서 작계 브리핑용 매트릭스를
가져오라고 했는데 병사가 매트리스로 잘못 알아듣고 싣고 왔습니다.”
보고를 받은 연대장은 기가 막혀 차라리 허허 웃고 말았지만
중대장으로서는 정말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상관 앞에서 화를 낼 수도 없고 어쩔 줄 몰라 당황스러워하고 있는데
이놈은 한 술 더 떠서 중대장보다도 엄청 높은 연대장은 본체만체
경례마저 하지 않고, 중대장 앞에 바짝 다가가서는 큰 소리로
경례구호를 외치고는(그 병사로서야 직속상관인 중대장이 높았을 뿐
그 옆의 연대장이야 안중에도 없었으니까)
“중대장님! 메트리스가 너무 많아 차에 다 못다 싣고 왔습니다.”라고
보고하는 게 아닌가?
군대에서 이런 난감한 상황이란 아주 보기 드문 현상이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어쩌겠는가?
결국 중대장은 기억되는 내용만으로 거점 분석 내용을
좀 엉성하게 보고할 수밖에 없었고
이후부터 연대 내에서는 ‘메트리스 중대장’이란 별명으로 불리게 되고 말았다.
이 사례는 그래도 순진한 고문관 얘기이지만
고문관 중에는 머리가 너무 좋아 아주 지능적인 병사도 있다.
이른바 ‘꾀돌이’? 아니다. 꾀돌이는 귀염성이나 있지 전혀 귀엽지가 않은
일종의 환자다. - 즉, 꾀병이다.
이 꾀병 환자들 때문에 많은 지휘관들과 군 간부들이 골치 아파하고 있는데
한 병사는 휴가 복귀 직전 중대장에게 전화를 걸어
“ 제가 볼 일이 이제야 끝나서 좀 늦게 귀대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 전라도 목포인데 이제 출발하니 몇 시간 걸립니다.”라고 하여
중대장은 늦어도 괜찮으니 서두르지 말고 안전하게 귀대하라고 당부하고 나서
그 놈의 평소 하던 짓을 감안하면 뭔가 석연치가 않아 아는 경찰 계통을 통해
그 놈이 전화한 장소를 추적해 봤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그놈이 전화한 곳은 목포는커녕 바로 부대 인근인 파주 금촌역이었던 것이다.
그놈이 감히 중대장에게 전화로 거짓말을 왜, 무엇 때문에 했을까?
귀대 후 중대장이 다그쳐 물으니 하는 대답이
“ 사실은 휴가 미귀(정해진 귀대시간보다 늦게 귀대)를 해서 ‘관심병사로 분류되어
힘든 일에서 열외 되는 등 좀 편하게 지내고 싶어 그랬습니다.“
또 한 병사는 오른쪽 팔이 옆구리에 붙어 들어 올릴 수도 없고 걸어 갈 때에도
앞뒤로 움직여지지 않는다면서 모든 훈련에서 열외 되고 있었다.
해 중대장이 군 병원은 물론 민간 유명 병원에까지 데려가 진찰을 받았지만
아무런 이상 증세도 확인되지 않았다.
두 달쯤 그런 상태로 지내던 어느 날 중대장이 그놈을 불러
“이놈의 자식! 감히 날 속여? 너 오늘 나한테 죽어 봐라!”하고
화를 벌컥 내며 때릴 자세를 취했더니
그 놈은 잽싸게 오른 팔을 들어 올려 방어 자세를 취하는 게 아닌가?
옆구리에 붙어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다던 그 오른 팔을
자신도 모르게 번쩍 들어 올려 방어 자세를 취했던 것이다.
이러니 지휘관들이 얼마나 속을 썩겠는가?
옛날 같으면 매타작으로 반은 죽여 놓았겠지만 지금은 절대 구타금지 시대다.
구타 금지!
구타 금지가 강조되다보니 어떤 놈은 구타를 고의로 유도하기도 한다.
요즘은 간부들이 컴퓨터 자판을 모두 익혀 자신이 직접 문서 작성 작업을
하고 있지만, 수년 전만 해도 간부 기안문을 처부 행정병이 작업했었는데
모 행정병이 평소 미워하던 간부를 골탕 먹이려는 의도로
그 간부가 지시한 기안문을 작성하던 중
16:45 하루 일과가 끝나는 나팔이 울리자마자 손을 놓고 사무실을 나가 버렸다.
“ 야 임마! 이제 다섯줄만 더 치면 되니까 마저 치고 나가라!”
“ 일과 끝났습니다. 매사 정확히 하라면서요? 전 정확히 시간을 지켰습니다.”
이런 괘씸한 짓을 보고 어느 간부가 이미 나가는 주먹을 되돌릴 수 있었겠는가?
(법보다 주먹이 먼저란 말이 있듯이)
이런 경우가 또 있었는데
군장 판매점에서 군장류를 팔고 있던 모 병사는
구매 순서 줄을 서고 있던 간부가 이제 단 한 명만 남아 있는데도
역시 16:45 일과 종료 나팔이 울리자마자 판매 창구를 닫아버린 것이었다.
단 2∼3분만 더 판매를 하면 되는데도
먼 곳에서 온 그 간부를 일개 병사 놈이 박절하게 판매를 거절하는
이런 경우도 있었다는 것을 그 누가 믿겠는가?
특히 옛날 그 살벌했던 군대를 경험한 분들은 아마 그럴 리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손사래를 칠 것이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었다.
어제 야외훈련을 하던 병사가 대대장에게
"훈련은 물론 군 생활도 못하겠으니 차라리 구속시켜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 병사는 몇 개월 전 이등병 주제에 병장에게 대검(帶劍, 소총 끝에 꽂는 칼)을
겨눈 적이 있었다.
감히 이등병이 중대 병사 중 최고선임인 병장에게 대검을 겨누고도 살아남았을까?
결론은 단 한 대도 안 맞고 살아남았다.(구타 금지니까)
이에 대해 헌병 수사관이 하극상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헌병대 사무실로 불렀다.
통상 어느 장병이나 헌병대에 호출되면 죄가 있든 없든 가슴이 졸아드는데
이놈은 감히 헌병 수사관(간부) 앞에 앉자마자
다리를 꼬면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빤히 노려보는 게 아닌가?
" 이등병! 자세를 똑바로 하라!"
" 제 자세가 어때서요? 그래 갖고 무슨 수사를 하겠다는 겁니까?
수사를 제대로 하려면 피의자를 편하게 해 주어야 똑바로 자백할 텐데
대면하자마자 겁이나 주면 제가 고분고분 답변을 하겠습니까?"
수사관은 참으로 기가 막혔지만
평소 그놈이 간부들을 어떻게 대하였는지에 대해 듣던 바가 있어
억지로 참아가며 왜 선임병에게 대검을 겨누었느냐고 질문하니
" 요즘 신병 전입시 사랑으로 보살피라고 강조하는데 과연 선임병이 신병을
사랑하는지 시험해 보려고 그랬습니다."
" 시험하려면 대검까지 겨누어야 하는가?"
" 병장이 신병인 저를 진정 사랑한다면 부드럽게 왜 그러냐며
대검을 치우라고 달랠 것이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정색을 하고 상급자 위협으로 지휘보고 할 것이기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 지에 대해 시험한 것입니다."
이 병사는 대대장이 어떻게 하든 순화시켜 무사히 군 생활을 마치도록 유도하기
위해 야간에 퇴근도 않고 00:00까지 별도 3시간에 걸쳐 면담을 해도
" 대대장님도 저를 사랑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탄약고를 비롯한
주요 초소 근무마저 열외 시키는 등
사고 우려자로 취급하면서 면담은 무슨 면담입니까?“라며 대드는 놈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비뚤어진 성격이 형성되어
초·중·고 대학까지 줄곧 왕따만 당해 왔었는데, 이와 관련,
" 대한민국이 나한테 해 준 게 뭐 있느냐? 오히려 6개월간 일본 유학시
일본인들은 너무도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면서
애국심은커녕 대한민국을 저주하는 이런 병사를......
그래도 그 병사 부모는 "제발 군대에서라도 사람답게 만들어 주십시오."라며
대대장에게 매달렸다.
그 따위로 자식을 키워 놓고 군대에서 사람 만들라니?
지난 6월 21일 동부전선에서 이른바 관심병사인 임 병장이 동료들에게 무차별
사격을 가하여 엄청난 물의를 일으킨 바 있지만
요즘 군 지휘관들과 간부들은 왜 골치 아픈 병사들이 점점 늘고만 있는지
도무지 불안해서 교육훈련에 전념할 수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도대체 대한민국 부모님들은 어떻게 자식을 키웠는데 이 지경인가?
맞벌이로 살다 보니 자식을 방임하다시피 키웠거나
아니면 하나만 낳아 온실 속에서 연약하게 키울 수밖에 없다고...
그리고 영어 수학 때문에 정규 과목도 아닌 역사나 도덕 교육을 제대로
시킬 여유가 없다는 핑계만 댈 것인가?
그렇게 키워 군에 보내 놓고도 무슨 사고라도 저지르면
군에서 잘못 관리했다고 고래고래 야단치며 원망할 자격이나 있는지 묻고 싶다.
물론, 대다수 군 장병들이 제자리에서 제 몫을 다 하려 엄청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관심장병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 어떤 사단에서는
그런 부류들만 모아다가 각 주임원사들을 당직까지 세우면서 별도 관리할 정도로
지휘 부담을 갖고 있음이 엄연한 현실이다.
국가 안보를 튼튼히 하기 위해 교육훈련에 전념해야 할 군에서
가정교육이 잘못된 장병들 때문에 간부들이 퇴근도 못하고
부모들도 안하던 신상상담에다 애로사항 파악에 매달려야 하는지?
심지어 어떤 부모는 "내 자식한테 애인이 있었습니까, 누군데요?"하고 묻는다.
행정보급관이 " 예, 고등학교 때부터 사귀고 있던 중 지금 고무신 거꾸로 신어
고민하고 있습니다."라며 오히려 자식 고민을 알려줄 정도이다.
부모들이 이렇게 자기 자식에게 무관심해도 되는 건지
군인이기 전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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