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시계(여강 최재효)
‘내 인생의 시간은 현재 몇 시 쯤 되었을까?’
불혹을 넘기면서 하늘을 보는 습관이 생겼다. 서른 중반까지는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며 세상의 느림에 대하여 한탄하곤 했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때는 시간을 우습
게 보았던 것일까. 유년시절에는 비슷한 나이 또래끼리도 나이 한 두 살 더 먹은 것이
어른스럽고 스스로 대견해 보이기도 했다. 이웃 아저씨가 지금의 내 나이 쯤 되었을
때 나의 시간은 까마득히 많이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인생은 나이에 정비례
하여 가속도가 붙는 다는 이야기 있다. 십대는 시속 10킬로미터로, 이십대는 20킬
로미터로, 사십 대는 40킬로, 팔십대는 시속 80킬로로 인생의 종착역을 향하여 질
주한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틀린 말이 아니다.
십대 때 감기쯤은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나이 육십이 넘는 어르신들은 매년
갈바람이 불어 올 때 보건소에서 무료로 놔주는 독감예방주사를 빼놓지 않고 맞는다.
독감예방 주사를 맞지 않으면 곧 저승사자가 데리러 오는 줄 안다. 상당수의 고령의
노인들이 가을에서 겨울 넘어가는 환절기에 이승 여행을 마친다. 청춘시절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던 감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그만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고속도로
에서는 작은 돌멩이에도 차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중년은 어느 정도
의 속도로 인생의 길을 달리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시속 50킬로 쯤 아닐까.
그러나 시속 50킬로미터의 속도에도 운이 없으면 차가 전복되기 쉽다. 인생의
노정(路程)에는 잘 알지 못하는 수많은 복병(伏兵)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 복병들은
익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존재들이다. 삼국지나 초한지를 읽어보면 안하무인의 기세
등등한 장수들이 예상치 못한 복명을 만나 순식간에 지리멸렬되어 궤멸되는 장면
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그때마다 우리는 박수를 쳐대면서 복병들을 응원했고 그
복병들이 마치 영웅인 것처럼 친구들에게 얄팍한 지식을 자랑하곤 했었다.
그렇다면 중년에게 있어 복병은 저마다 사정이나 사회적 위치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개가 몇 가지로 압축되어 진다. 나의 생각으로는 그 복병들 중 상당 부분은 곧 돈과
명예 그리고 애욕이라고 판단된다. 잊힐 만하면 발생하는 어린이 유괴사건이나
내연녀 살인사건 또는 근친에 의해 저질러지는 생각하기조차 싫은 사건들이 요즘은
줄을 이어 매스컴에 오르내린다. 모두가 지나친 자기과시나 물욕의 노예로 전락한
생각 없는 어른들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 선거철만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철새
떼들 이나 모리배들이 선량한 시민들을 지배하려 든다. 또한 연예인들은 유명인이
되기 위한 필수적인 요건으로 이혼을 한다. 그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그럴 듯하지만
실은 육욕(肉慾)이나 황금 때문이 아닌가. 대부분이 중년이라는 고속도로를 질주
하는 자동차들이 만들어 내는 어줍지 않은 쇼들이다.
지금 한국의 중년들의 주소는 한국전쟁이 끝난 후 50년대 중반에서부터 시작해
60년 대 초중반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나 또한 중년의 한가운데 서 있다. 요즘 벌어
지는 상당수의 비리는 중년들이 만들어 내고 있고 그 상처는 아래 세대들이 입고
있다. 부동산 투기, 복부인, 치맛바람, 무분별한 주식이나 펀드투자, 근본도 모르면
서 특정 종교에 몰입하는 경우가 흔히 지적될 수 있겠다. 또한 원정출산을 부추기
는 이기주의나 친구따라 강남가는 속 없는 유학도 대부분이 베이붐 세대들이 앞장
서서 부조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들은 문명의 이기인 금속성의 시계(時計)가 아닌 조급성의 시계(視界)를 지니고
있다. 그 시계는 시속 50킬로가 아닌 300킬로 이상의 초고속으로 죽음을 향해 질주
하는 급행열차와도 같다. 다행히 완주하면 대박을 터트렸다고 나발을 불어대고 아니
면 전복되어 형체조차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망가진다. 나는 10년 전부터
손목 에서 시계를 떼어 버렸다. 거추장스럽고 쓸데없이 긴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휴
대폰이 전 국민의 애장품이 되다시피 한 지금 시계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 시계를
버렸지만 실은 시계를 차고 다닐 때보다 더 바빠졌다. 전 국민이 휴대폰의 노예가
된 것이다. 나는 휴일이나 회사에서 퇴근하여 집에 들어오면 휴대전화를 아예 꺼놓
는다.
그리고 아무도 나를 속박하지 않는 상황에서 내 중년의 시계를 보고 있는 것이다.
시속 10킬로도 아니고 80킬로도 아닌 안개 속을 달리는 자동차 같다는 불길한 생각
이 든다. 가만히 내 주변 상황들을 보면서 ‘왜’라는 반문에서 시작해 ‘그래’라는 수궁
보다 ‘아니야’라는 쪽에 무게를 두면서 앞은 더욱 불투명하다. 나 역시 시속 300킬로
미터 이상으로 달리고 싶어 하는 자동차를 타고 있는 탓이리라. 언제까지 중년일수는
없다. 내일이면 초로의 경계에 들어서고 나 역시 늦가을에 독감 예방주사를 맞아야
안심하고 케케묵은 추억을 하나씩 되새김질하면서 밤잠을 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내와 아이들이 나의 2:8 헤어스타일에 굉장히 불만을 갖는다. 느끼해 보이면서
왠지 나이에 비해 늙어 보인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지난주부터 기존의 헤어스타일을
과감히 버리고 요즘 유명세를 타고 있는 중년 남성 탤런트들의 헤어스타일을 자세히
관찰하고 있다. 그렇다고 베에토벤이나 엘비스 프레슬리의 헤어스타일을 모방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조만간 이방인이 되어 있을 내 모습에 나 자신도 궁금해진다.
지금의 제한속도 없이 무한 질주하는 나 자신을 과감히 버리고 나이에 맞는 속도로
수정하여 좌고우면(左顧右眄)하면서 달과 지구의 공전과 자전의 리듬에 공손하게
응하면서 돈보다 정(情)을 우선하고 새로운 명예보다 지금의 내 위치에서 조용하게
지내고 싶다. 진정한 내 중년의 시계를 자주 바라보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