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내리사랑, 그리고 家長으로서의 原罪

락운강촌 2008. 12. 29. 12:05

내리사랑, 그리고 家長으로서의 原罪


강촌 김락운


 주말 휴무 간 ‘송사리’ 프로그램에서 대중음악을 다운 받던 중

백지영의 ‘총알 맞은 것처럼'이란 최신곡이 음원 협의 중이라는

안내와 함께 다운이 안 되어 다시 다른 블로그를 찾아 들어가

겨우 다운 받으면서

‘도대체 쉰이 훨씬 넘은 나이의 내가 왜 이런 노래들을

이렇게 어렵사리 다운받아야 하는가?’라는 회의에 빠지게 되었다.


- 나로서는 도저히 부를 수도 없고,

  듣기에도 별로인 손담비의 ‘미쳤어', 백지영의‘총알...’등

  신세대 노래들을 도대체 왜 내가 다운받아 CD에 구워서

  차량에 비치해야만 하는가?-


내 전용 자동차에 내가 좋아하는 나훈아의 ‘공(空),‘홍시, 장윤정의

‘첫사랑', 그리고 등려군과 김용림 메들리나 비치되어 있으면 되는 거지

뭐 하러 딸내미들이 승차할 것에 대비해서 그 소음 같고 따라할 수도 없는

랩 노래 등을 유행 따라 비치하고 있는 건지...


또, 내 차인데 내 담배 냄새 좀 나면 어떤가?

내가 뭐하는 짓인가? - 운전하다가도 정차해 놓고 문밖으로 나가 한 대 피고.....


도대체 가족들한테 뭔 큰 죄를 졌다고 이런 불편을 감수하고 있는가?


이미 가족 암 수술 후

아내의 금연 요구에 마지못해 순응하다가 금주 요구까지 받고

스트레스에 못 견뎌 누적된 울분을 폭발한 적이 있었다.


- 도대체 내가 뭐냐?

  돈 벌어 오는 기계냐? 노예냐?

  온갖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착실하게 남편 노릇 해 오고 있지 않냐?


  남들처럼 회식이 많은가? 노름을 하나? 골프를 치나?

  남들처럼 유행 따라 애인이라도 있냐?

  오로지 직장과 집만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고 있을 뿐인 걸

  잘 알고 있잖은가?


  남들처럼 철마다 새 옷을 사 입는가?

  하다못해 속옷마저 헌 것을 입고 또 입는 이런 인생을

  도대체 내가 뭐 하러 사는지 모르겠다.


  오직 낙이라곤 스트레스 해소용 담배에다 저녁 식사 때 飯酒뿐인데

  이마저 하지 말라는 것은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 -


결국은 가족들로부터 '불쌍한 남편'이고 '가엾은 아빠'로 인정받아

금주/금연 족쇄로부터 벗어나 오늘에 이르긴 했지만...


그런데 

근간에 나도 모르게 다시 가족들에게 순응되어지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느껴졌다.


우선 금연/금주 문제부터 압력이 재개되었다.

맞대응이 안 되니까 평소 내가 어머니 이상으로 여기면서

꼼짝 못해 하고 있는 형수를 동원하고 있고...


* 중학교 때 시계도둑으로 오해받을 때 자신의 결혼 예물용 손목시계를 서슴없이 내준

   이래 형수 말이라면 거의 절대 복종하고 있음.


내차에 방향제 냄새만 나는 것 같은데도

차에 탈 때마다 니코틴 냄새가 배어 있어 어지러워진다면서

창문을 열어 실내 공기를 춥게 만드는가 하면,


내 깐엔 신세대 노래라고 '쿨'이나 '핑클', 효리의 '텐 미니츠' 등을

틀어주면 이미 한물 간 노래라면서(맞는 말이길 하지만)

볼륨을 최대로 줄이고는

자기네끼리 크게 잡담이나 늘어놓아 내 귀를 거슬린다.


주말 시장보기로 마트에 가서도

내 카드를 쓰면서도 술사면 짜증을 내는 한편,

난 쓰지도 않는 얼굴 팩이나 난 먹지도 않는 과자류를 구입한다.


아내는 또 어떤가?

내가 수원 사회적응교육에서 연금통장과 카드는 마누라를 포함 아무에게도

내 주지 말라고 했다니깐

"또 엉뚱한 데나 쓸 것이 뻔하니깐 내가 관리해야지 무슨 소리냐?"면서

이미 몇 십 년 전 사기당한 얘기를 또 리바이벌하면서 내 입을 봉한다.


그 뿐이 아니다.

초·중·고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서 그동안 못 만났던 옛 친구들과

안부를 교환하자 "노인네들이 주로 이성 동창들과 바람나고 동창들로부터

사기 당한다."면서 시골가면 인터넷부터 아예 가설하지 않겠단다.


이 무슨 창살 없는 감옥인가?


가족사랑!

특히 자식 사랑을 '내리사랑'이라 부른다.

- 내 핏줄이니 어쩔 수 없는 무조건적 사랑이란 의미고

  누구나 예외일 수는 없다.


하지만 솔직히 짜증난다.


빨리 시집가라면 무슨 독신주의 운운하면서 나보다 더 짜증내고..

엄마가 시골 가 있을 때 내 저녁 식사를 마련하기가 귀찮은지

수시로 저녁 회식이 없냐고 묻는다.


- 일부러 회식이 있어도 없다고 하고는 회식 도중에 귀가하여

  이미 배가 부른데도 꾸역꾸역 식사를 하는 것으로

  몇 번이나 치졸한 반항을 했지만....-


이게 무슨 나약한 짓인가?


나는 엄연한 가장(家長)이다.


특히, 유산 한 푼 받지 않고 내가 일해서 내 봉급 받아서

내 재산모아 살고 있다.

그런데도 家長 맘대로 가정을 관리했던 아버지처럼 하지 못하고

나는 왜 아내 눈치, 자식 눈치를 보면서 살아오고 있는가?


스트레스 받으면 병이 되는데.....


그래서 가족들과 싸움을 벌이기도 싫다.

하루 2만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여자들.

합이 세 명이면 6만 단어인데

고작 하루 7천 단어 능력이 있는 남자로서 어떻게 당할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가정을 잘못 관리해 온 내 탓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억울하다.

다만, 싫다는 여자와 결혼을 강행한 죄.

그리고 내가 딸들을 낳았다는 죄.

엄밀히 따지면 이건 죄도 아닌데...

왜 내가 주눅이 잔뜩 들어 있는 채 살아 왔는가?


지금까지 딸만 둘 두었다는데 대해 그다지 후회한 적이 없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나 스스로가 너무 가엾게 살아왔다.


아무리 여성부가 생긴 이래 호주세가 폐지되는 등

가부장적 권위가 밑바닥에 닿을락 하다지만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신세대도 아니면서 가정 경제 주도권을 내 준 후

나 자신도 모르게 잃어버린 나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일단은 최신곡 CD에 내 애청곡까지도 삽입해서 차량에 비치했다.

그리고 어제엔 매주 가던 주말 시장보기도 가지 않았다.

앞으로도 가족들 소용품은 각자 사라고 할 거다.

- 지금까지 직장가진 딸년들 생활용품까지 내가 사 줘 온 것이 잘못이다.-


금연/금주야 내 건강을 위해서는 내 스스로 새해부터

비록 작심삼일이 될지언정 시도하기로 작정했었지만

체계가 정착될 때까지 당분간은 보류해야겠다

그 외 다른 것들도 말없이 내 맘대로 추진하자!


이렇게 양보해 왔던 내 권리를 과감히 되찾겠다고 다짐하면서도

하필이면 연말년시 다가올 가정불화 분위기가 못내 걱정되고 있으니..

과연 내가 나를 제대로 찾을 수가 있을지...?


남들은 이럴 때 어떻게 해결해 왔는지

못내 궁금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家長)이란 원죄가 원망스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