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왜 군인들은 결혼식장에서 칼을 뽑아드나
□ 총기수입(일반 사전에 없는 낱말임)
o 총기(銃器) + 수입(Sweep : 청소하다)
사례 : 축구
골을 지키는 사람 : Goal Keeper
수비수 스위퍼 : Sweeper(볼을 걷어 내거나 아웃시키는 사람)
수비수 스토퍼 : Stopper(상대 공격 볼을 멈추게 하는 사람)
□ X반도
o X(Cross) + 반도(Band의 일본식 발음)
Band : 묶는 것, 띠 모양의 끈
□ 채난장비 : 난로
o 채(採 : 캘 채) + 난(暖 : 따뜻할 난)
석탄을 채굴하여 연료로 사용한 난로
□ 시건장치
o 시(施 : 베풀 시, 행할 시) + 건(鍵 : 자물쇠 건) : 일본식 용어
o 미군이 사용한 자물쇠 브랜드인 “Sea Gun”의 발음이라는
설도 있음.
□ 건제유지
o 건(建 : 세울 건) + 제(制 : 억제할 제, 규정, 정하다)
군대를 일정한 기준으로 편성하는 것
□ 바리깡 : 이발기구
o 어원은 프랑스어 Bariquand의 일본식 발음
o 이발기구 브랜드인 Bariquand et Mare를 명칭으로 사용
□ 군복의 유래
o 군인들은 옛날부터 일반 시민과 다른 특별한 복장을 했다.
중세의 귀족 출신 기사들은 가문과 지위를 표시하는 화려한
장식과 문양이 있는 갑옷을 입었다.
o 일본의 사무라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일반 병사들도 농민들과 구분되는 복장을 했다.
o 스파르타 병사들은 빨간 망토를 걸쳤고, 로마군단 병사들은
방패에 특별한 장식을 했다.
o 오늘날과 같은 통일된 군복이 시작된 것은 17세기다.
그 전까지는 각 부대의 지휘관이 마음대로 병사들의 복장을
결정하고 있었다.
o 1630년, 스웨덴의 구스타브스 아돌프스는 자기 병사의 복장을
청색- 황색-초록색 군복으로 통일하기 시작했다.
o 프랑스군은 이보다 늦은 1700년경에야 통일된 군복을
채택했지만, 나폴레옹은 가장 화려한 군복을 채택했다.
멋을 내는 경쟁은 특히 전쟁이 끝난 다음 절정에 달해 병사들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몸에 꼭 맞는 군복을 즐겨 입었다.
□ 왜 군인들은 결혼식장에서 칼을 뽑아드나
o 병영 내 결혼식에서 주례사가 끝난 후 맨 마지막 순서로 신랑 ․
신부가 결혼행진곡에 맞추어 걸어 나가게 되는데, 그 순서가
되면 느닷없이 헌칠한 체격의 의장병들(?)이 거침없이 걸어 들어
와 두 줄로 마주보고 서서 지휘자의 교차 칼!” 구령에 따라 칼을
뽑아 높이 들고 칼끝을 마주 댄다.
o 그러면 신랑 ․ 신부는 태연히 웃음 띤 얼굴을 하고 그 시퍼런
칼날들 밑을 통과하여 여유 있게 걸어 나간다.
o 원래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시설 같은 성스러운 곳이나
결혼식장 같은 경사스러운 행사장에 누구도 무장하고 들어가는
일은 없다.
그러나 軍 영내 결혼식에서 시퍼런 칼을 뽑아들고
들어가다니...
o 이것은 우리 식이 아니다.
옛날에 서양에서 약탈혼 풍속이 있었을 때, 다른 부족이나
다른 동네 여자들을 빼앗아 온 후 이웃들 앞에 공개적으로
자기 아내임을 선언(결혼)하였다.
o 그때 빼앗긴 쪽에서 역시 힘(폭력)으로 여자를 되찾아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이웃 장정들이 칼을 들고 나와 지켜 준 데서
유래한 것이다.
o 이러한 약탈혼 풍속의 잔재가 서양 군인의 결혼의식에서
신랑․신부의 교차 칼’ 속의 행진이라는 모양으로 전해 내려온
것이, 6․25 전쟁 때 우리를 돕기 위하여 참전한 서양 군대를
통해 우리 군대에까지 전파된 것이다.
o 이제 신랑․신부의 ‘교차 칼’ 속의 행진이 군 복무를 마친
학군출신 예비역 장교들의 결혼식에서 때때로 선보이는 일도
있다. 대학 학군단 후배들이 예도를 가지고 결혼식장에
들어와 군 영내 결혼식에서 교차 칼 속의 신랑․신부 행진과
같은 것을 연출한다.
o 일종의 군대문화의 전파인 것이다.
어쩐지 어색해 보인다.
우리 민족의 평화로운 모습의 결혼의례에 야만적인 약탈혼
풍속의 잔재가 오염되는 것은 그 모양도 어울리지 않지만
주체성의 차원에서도 다시 생각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 인식표
o 군에서 소위 ‘개목걸이’ 라 부르는 인식표(認識票․
Identification Tags, Dog Tags)는 군인의 성명․군번-․
혈액형 등이 새겨져 있는 길이 5cm, 폭 3cm 정도의 타원형,
또는 지름 3~4cm 정도의 원형으로 되어 있는 얇은
금속판이다.
o 인식표는 보통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져 있어 부식되지 않으며
쇠줄이나 끈 등으로 목에 걸도록 되어 있다.
군인이 전투 중 부상하거나 전사했을 때 신분을 식별하기 위한
것으로,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게 되어 있다.
o 병사가 전투 중 전사하면 두 개의 인식표 중 하나는 전사한
병사의 치아에 박아 넣고, 하나는 전사 ‘신고용’으로 떼어
간다.
o 2001년 12월 28일 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계 1리 마을
입구에서 ‘ 6․25 참전 소년 지원병 전우회(회장 박태승)가
1951년 1․4후퇴 때 숨진 한 참전 용사의 무덤이 마을 입구에
방치돼 있다는 제보를 받고 50여 명의 회원 ․ 후배장병들과
발굴에 나섰다.
o 잡초만 무성한 무덤을 조심조심 파내려가 3동안 2m가까이
파내자 유해와 유품이 모습을 드러냈다.
참전용사의 유해는 풍화됐으나 놀랍게도 목에 걸고 있던
군번줄, 금속 인식표가 녹슬지 않고 유해 옆에서 반짝거렸다.
전우회는 인식표를 육군 본부에 보내 신원을 확인한 결과
51년 간 방치돼온 무덤의 주인공이 당시 국군 2사단 소속
이 모 씨의 것으로 밝혀냈다.
o 인식표는 미국 남북전쟁 중에 등장했다.
1908년 미 육군에서는 50센트 정도 크기의 인식표를
병사들에게 무상으로 지급하기 시작했다.
원판에는 계급, 성명, 소속부대 등을 적었으나 1918년
미국에 군번제도가 채택되면서 이 원판에서 부대와 계급은
빼고 대신 군번을 박아 넣기 시작했다.
진급과 보직 이동이 있을 때마다 바꿔야 했던 불편을 덜기
위해서였다.
인식표는 훈련 중이거나 항공기를 탈 때도 거의 예외 없이 착용하도록
하고 있다.